조하리의 창 : 신중형 의사소통
말하지 못하면 약점이 됩니다
자신을 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을 가리켜 ‘자기표현에 능숙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눈치없는 수다쟁이가 아닌 자기표현에 능숙한 사람이 되기위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정보는 되도록 숨기고 선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비밀 영역’이 넓어지며 이 때의 의사소통 유형을 ‘신중형 의사소통’으로 구분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으면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숨기거나 꾸며내는 것이 많아지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신중형’은 현대인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편하게 지내지만 직장동료를 대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신중해지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자꾸만 숨기게 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수용적이고 속 깊은 사람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신중하기만 한 관계에서는 서로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어서 오히려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다.
‘자기 노출’은 스스로 드러내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들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괜찮다’는 말에 함정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실망하거나 자신을 속단해버릴까 두렵기 때문에 좀처럼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상대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신의 모습을 그냥 드러내기에는 전혀 괜찮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비밀영역’의 정보는 단지 드러내지 않았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숨겨진 ‘콤플렉스’의 영역이기도 하다.
누구나 말 못 할 사연을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다.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만, 그것도 사족을 잔뜩 달아서 겨우 털어놓을 만큼 내밀한 사생활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온통 ‘비밀영역’에 두고 제대로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숨기려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거리감이 생긴다. 게다가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도 공격이나 질책으로 느껴지기 쉽고 이때 상대방의 피드백은 오히려 ‘자기노출’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못하는 사실은 약점이 된다. 경문왕의 ‘귀 설화’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바람소리에 마침내 왕관을 벗어던진 왕이 등장한다. 당나귀 귀를 숨기려고 애를 쓸 때는 부풀려진 소문이 무성했지만 막상 왕관을 벗어던지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자신만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누구나 겪는 일이거나, 정작 그것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별일 아니었던 경험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밀 영역’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한가지 고질적인 생각습관이 있다. 바로 ‘남이 나를 평가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삶의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남들과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 그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을 숨기고 포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실패하면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갇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이제껏 우리가 제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몇가지 이유들에 관해 좀 더 이야기 나누고, ‘타인의 눈’을 검열의 기준이 아닌 관계의 시작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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