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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Jun 11. 2020

안전하게 마음열기

'개방형 의사소통'으로 확장하려면

안전하게 마음 열기, 나를 위한 재능기부


마음을 여는 일에는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다. 마음을 열면 누군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이리저리 나를 흔들어 놓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인생이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SNS를 통한 선택적 관계맺기가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래전 유행했던 싸이월드 ‘일촌’이라는 표현과 비교하면 지금 페이스북 ‘친구’라는 말은 훨씬 그럴듯해서 마치 현실 친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익명으로 고민을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까운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댓글을 주고받거나 채팅창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진정한 관계를 경험하는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의 기준도 아닐뿐더러 한 쪽에서 접속을 끊으면 바로 종료되는 관계에서 지속적인 안정감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P는 수능 영어 일타강사다. 입시 성과도 좋은 데다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깊이 교제하지는 않으니 이른바 ‘풍요 속의 빈곤’이다. 빠듯한 일정때문에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 어색한 상황이 불편해서 사적인 자리는 일부러 피할 때가 많다. 적당한 거리에서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데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라인 전투게임 동호회에서 운영하는 단체 카톡방에서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적 만남이다. 여기서는 아무도 자신의 개인사를 묻지 않고 그역시 다른 사람들의 신상이 크게 궁금하지 않다. 가끔 전투에 성실히 임할것을 강요하는 메세지를 남기는 사람도 있는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게임에서 탈퇴하면 카톡방에서도 나가는 것이 원칙이어서 어느샌가 활발히 활동하던 몇몇의 대원이 사라졌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누구든 사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만남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항상 일회용 관계에 의존하는 것은 관계의 갈증을 더할 뿐이다. 울적한 마음에 무심코 전화번호부를 거의 끝까지 내려가 보았는데 어떤 번호도 선뜻 눌러지지 않을 때 한순간에 공허함이 몰려온다. ‘관계’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부담감을 줄이면서 안전하게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P는 우연히 지역학습센터에서 교육 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쿨한 척하는 것도 마케팅이 되는 직장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훨씬 편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보니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곳에서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소탈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늘 그를 반겼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점점 편하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되면 다들 아쉬워하며 함께 소소한 송별회를 준비하기도 했다. 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가끔은 더 세심하게 살피기도 했지만 센터에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편안했다. 그는 아직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서툴지만 친밀한 관계가 주는 안정감을 경험한 뒤로 그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사회학자 베리 웰먼 Barry Wellman 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Networked Individualism’를 언급하면서 능동적이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관계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천해가는 것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봉사 활동은 사적인 영역을 개방해야한다는 부담감을 최소화하면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다. 선한 의도로 모인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가 안정감을 주며 상대방에게 거절당할 위험부담을 줄여준다.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목적성이 뚜렷한 동호회나 학습모임에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고도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활동들을 단순히 관계의 도구로써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한 관계에서 경험한 친밀한 감정은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을 대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 경험을 일상으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한 관계에 몰두한 나머지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된다. 무조건 수용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에 심취하거나, 봉사활동을 위해 생계를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인정과 관심을 요구하는 기형적인 관계로 변질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으려면 초기의 불편함은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조심스럽고 거절이 염려되어도 우선은 상황을 마주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한 환경에서 조금씩 자신을 개방하는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로 확장되는 경험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부비부비 쓰담쓰담, 관계 호르몬의 비밀 



관계 호르몬의 비밀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살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살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행동은 소통을 돕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이때마다 우리 몸속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지속하거나 강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이 나온다. 유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이 신경전달물질은 2005년 신경학자 폴 자크 Paul Zak가 그 간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신뢰호르몬’, ’관계호르몬’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2009년에는 이것이 세로토닌과 도파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는 ‘옥시토신 시스템’을 구성한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활용하여 ‘쑥스러움 방지제 Anti-shyness spray’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스프레이는 원래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한 결혼정보회사가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매칭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해서 한 때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지면서 흥미로운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파티용 환각제로 알려진 ‘엑스터시ecstasy’의 효능과도 비슷해 사람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린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스위스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교수팀에 따르면 옥시토신을 동물에게 투여했을 때 경계심을 완화해 손쉽게 짝짓기를 유도할 수 있었고, 사람에게 뿌렸을 때는 금전거래에서 상대를 신뢰하는 비율이 현저히 높아졌다고한다.


옥시토신은 감사나 감동과 같은 적극적인 감정표현을 할 때 몸 속에서 저절로 생성되는데  ‘CD38’이라고 불리는 감사 유전자가 이러한 활동을 돕는다. 이 유전자는 6개월정도의 꾸준한 노력으로 새롭게 생성되거나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감사하는 습관을 통해 우리는 손쉽게 '옥시토신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 매일 감사한 일 한가지를 떠올리고 최대한 자세히 회상하는 것은 우리 몸속의 ‘CD38’유전자를 을 활성화하는가장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 겪었던 가장 감사한 일 한 가지를 떠올려보라. 

자세하게 떠올릴수록 옥시토신 분비는 활성화된다.






‘접촉’을 통해서도 옥시토신의 분비를 늘릴 수 있는데, 아이를 낳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여성의 옥시토신 수치는 출산과 수유를 통해 자연 증가하였지만 남성의 옥시토신 수치는 자녀와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접촉이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하고 생성된 호르몬은 유대감을 높이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쓰다듬는 행동은 상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반려견을 쓰다듬을 때 반려견의 옥시토신 혈중 농도의 변화를 측정했더니 호르몬 수치가 평상시의 130배에 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주인의 혈중 옥시토신 농도는 300배가량 증가했다. 


옥시토신의 다른 이름은 ‘관계 호르몬’이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고, 보살펴주려는 마음이 세포에 자극을 주고 우리 뇌에는 긍정적인 감정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함께 증가하여 이른바  ‘옥시토신 시스템’을 강화시킨다. 한번 친절을 베푼 사란은 자꾸만 친절을 베풀게 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상대방을 점점 신뢰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로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상대방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용기가 필요할 때, ‘관계 호르몬’ 옥시토신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용기있게 다가가고 상대방을 수용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접촉하는 경험을 통해 관계가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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