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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Sep 20. 2020

자존감 쪼꼬미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자존감 & 자존감 안정성

진짜 나르시시스트



몇 해 전 자존감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다. 강연이나 책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았다는 간증이 쏟아졌고 어렵게 얻어낸 자존감을 위협하는 것들에는 일절 신경끄라고 날을 세우는 콘텐츠들이 함께 인기를 끌었다. 조언을 간섭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당당한 태도와 예의 없는 행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수년간 떠밀리듯 키워낸 우리의 자존감은 지금쯤 얼마나 높아졌을까? 자존감은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용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모리스 로젠버그 Morris Rosenberg에 따르면 자존감은 자기가치, 자기존중, 자기수용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말한다(Rosenberg, 1965). 이와 같이 자존감은 구성요소가 다양한 데다가 그 평가는 자신의 판단기준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단기간의 반복적인 자기암시를 통해 금새 나아진 것처럼 착각하기도 쉽다.


1박 2일 자존감 워크숍에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자신감을 일상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은 체험이다. 명사의 강연을 듣거나 잘 쓰여진 책을 꼼꼼히 읽고 필사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는다. 남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의 일상에서 자존감과 연결된 단서를 직접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직접 수정해나가면서 스스로를 인정하는 경험을 할 때 진짜 자존감이 채워진다. 다음은 자존감 검사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이다. 질문지를 살펴보면 자존감을 측정하는데 중요하게 여겨지는 몇가지 척도를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3, 4, 7, 10번 문항에서는 매우 그렇다=7점, 매우 아니다=0점

2, 5, 6, 8, 9번 문항에서는 매우 그렇다=0점, 매우 아니다=7점


1. 대체로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2. 가끔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3. 나는 내가 좋은 자질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4. 나는 다른 사람들만큼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5. 나는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
6. 나는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씩 내가 쓸모없다고 느낀다.
7. 나는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들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8. 나는 스스로를 좀 더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9. 대체로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0.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about H'의 조사에 따르면, 7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자존감 평균 점수는 4.6점이다. 원문RSES에서는 각 항목을 1~4점으로 측정하게 하고, 자존감의 수준을 낮음/보통/높음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이는 동서양 53개 국가들 중 46위에 해당하는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 짐작된다. 이 검사지를 비롯하여 자존감을 측정하는 방법은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권에서 개발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우리의 관계중심적인 사고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가령 이 검사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는 제 멋에 사는 나르시시스트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후에 문화적 요소를 반영한 새로운 자존감척도가 개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존감 측정을 위한 모든 구성요소를 정확하게 반영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존감이 높을수록 공격적이거나 자만심이 높으며 오히려 관계역량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는데, 이는 자존감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는 검사지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자존감의 또다른 영역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존감이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진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공격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어디서든 당당해졌지만 여전히 타인이 자신을 위협하거나 혹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지금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신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싶어하면서도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잘난척 하거나 남을 깎아내려  돋보이려고 한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자존감이 필요한 것은 혼자 우뚝서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관계를 위한 자존감이 필요하다. 



진짜 자존감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존감에 관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자존감 안정성’이다. 자존감은 매 순간 달라진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주변 상황이나 여건에따라 자존감이 오르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은 아동기에 최고치를 보이다가 청소년기에 감소하고, 성인기에 점진적으로 상승하다가 노년기에 떨어지는 반면, ‘자존감 안정성’은 아동기에 최저치로 시작하여 포물선을 그리며 상승하다가 성인 후반기에 최저치로 급격히 떨어진다.(Robins & Trzesniewski, 2005; Trzesniewski, Donnellan, & Robins, 2003). 항상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것을 달리 생각해보면, 낮아진 자존감은 언제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체로 자존감이 높으면서 불안정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자존감이 낮고 불안정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피하려고 한다(Kernis, et al., 1993). 특히 자존감이 높고 불안정한 집단은 타인에 대한 적대감이 강하기 때문에(Kernis, 2003) ‘대단한 나’를 침해하는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하거나 ‘부족한 나’의 모습이 들킬까봐 두려워한다. 또 자존감이 불안정하면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자신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지는데, 그 결과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게 된다. 아래는 자존감 안정성 검사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금방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0-----1-----2-----3-----4-----5  


    나는 뛰어난 사람을 보면 초라해지다가도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금새 내가 대단해 보인다.  

0-----1-----2-----3-----4-----5  


    나의 자존감은 주위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한다.  

0-----1-----2-----3-----4-----5  


    나의 가치는 성공과 실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다.  

0-----1-----2-----3-----4-----5  


    나는 내 자신의 가치가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한다.  

0-----1-----2-----3-----4-----5



합산한 점수가 낮을수록 자존감 안정성은 높다. 문항을 살펴보면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요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존감 안정성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몇 개의 문항을 선택하여 실었다. 자존감 안정성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존감도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늘 일정할 수는 없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나면 더이상 완벽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어느 때는 자존감이 뚝 떨어졌다가 또 어떤 때는 통큰 대인배가 되어 다른 누군가를 품어주기도 하면서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그러나 자존감 탄력성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자신을 비난하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지켜내기 어렵다. 우리는 소외감을 느낄때 쉽게 마음이 약해진다. 이런 감정을 상쇄시키려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이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모진 말을 듣고나서 마음이 무너질 때, 혼자서 분을 삭이는 대신 가까운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는 것도 좋은 연습이다. 나를 지지해 줄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각자의 놓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다만, 비난을 받아 쪼그라 든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지만 않으면 된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당하면서 혼자서 자존감을 지키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나 혼자서 강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지지와 공감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자존감 이슈가 유행처럼 지나가 버려서 다시 꺼내기엔 너무 식상한 주제가 되었네요~

언제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제게도 자존감 쪼꼬미가 다시 찾아왔기에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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