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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Jan 08. 2021

관계를 대하는 네 가지 관점


출처 : 윤혜진의 브런치



진정한 관점 : 진정한 관계의 시작  

    ‘선한 의도’를 믿는 본질적 신뢰  
    다양한 관점 -> 이해와 공감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믿고, 상대를 보는 관점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항상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관계는 건강하다. 안타깝게도 상대를 깊이 신뢰하는 것이 항상 좋은 관계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이것이 건강한 관계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상대방이 보내는 감정 정보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피실험자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에 찡그리는 표정과 미소짓는 표정을 차례로 제시했는데 피실험자는 거의 반사적으로 제시된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세표정 전문가 폴 에크만 Paul Ekman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의도는 어떤 형태로는 겉으로 드러나며 상대방은 그 수백만분의 일초의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의 ‘선한 의도’를 믿는 만큼 나의 진심도 그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을 믿는 마음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관계는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 나눈 대로 무엇을 보든지 인식의 자동필터가 작동 중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뜬소문에 흔들리거나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 그 관계는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이 나고 만다. 제삼자의 말 한마디로 이별한 연인에게 믿음이 부족했다고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소중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일로도 상처가 나기 쉽다.. ‘사람은 겪어보아야 안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와 제대로 관계 맺으려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섣부른 생각은 먼저 내려놓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시작하는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오해로 무너진 관계를 영영 되돌리지 못한다고 체념하면 생각은 어느새 자기합리화로 흐른다. 망가진 관계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긴 채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나 버린다. ‘때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따뜻한 위로를 기억하며 상대의 ‘선함을 믿는 마음’을 회복하면 ‘다양한 관점’은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진다. 아팠던 상처와 회복의 과정이 관계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낸다.






출처 : 윤혜진의 브런치



도구적 관점  : 사회적 관계의 유지  

   감정적 무관심 / 불신
    다양한 관점 -> 평가와 비판


(0114 수정 : 사회적관점-> 도구적 관점)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모두와 ‘진정한 관점’을 공유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에게 완벽한 역할을 요구하는 사람들 틈에서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속없는 행동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래서 표현에 서툰 사람들은 상대에게 무심한 듯 행동하며 절대 곁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십만 년 전부터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 온 우리에게 ‘무심함’이란 일부러 다가가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에게 ‘웃지 마, 정든다’ 는 말로 조심스럽게 곁을 내주는 관계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기 위해 비교적 다양한 관점으로 상대를 검토한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눈빛만 보고도 서로에게 필요한 업무를 척척 해내지만 퇴근한 후에는 상사든 부하직원이든 회사 동료의 전화벨만 울려도 숨이 턱턱 막힌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누구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가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역할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만을 살피는 관계에서는 오랫동안 쌓아온 ‘다양한 관점’이 단순히 평가나 비난의 근거로 전락하기 쉽다. 그리고 상대를 보는 나의 시선이 ‘도구적 관점’에 머물 때 거리를 두려는 마음은 상대방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는 ‘교사에게 무례한 학생’이나 ‘제자와 데면데면한 교사’가 있고, 직장에는 ‘부하직원을 하대하는 상사’와 ‘부장님을 꼰대라 부르는 직원’이 있다.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서로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유는 철저히 자신과 상대의 사회적 역할만을 보기 때문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선생님은 그저 ‘잘 가르치는 교사’와 ‘못 가르치는 교사’로 나뉜다. 이들은 학생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선생님을 만나기 어렵다. 겉으로 보이는 역할만으로 관계를 인식하면 세상은 예외 없이 팍팍해진다. 지금 삭막한 세상을 살고 있다면 자신의 관점을 먼저 돌아볼 일이다.


간혹 상대방의 선함을 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 조심스럽게 내어 준 마음을 약점 삼아 상대방을 휘두르려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때는 그 강퍅한 마음을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 반면교사로 삼거나 오래 볼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계속 인간적인 시선을 보내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가깝게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고 멀리는 그 사람의 인생이 변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기술이나 지식만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무심한 관계에서는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다. 원래 인간은 가까이서 교류하며 살아가는 것이 본능이지만 상대를 보는 ‘도구적 관점’을 고수하는 한 우리는 본능을 거슬러 상대방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여기에는 친밀한 관계가 업무적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오해가 한몫하는데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 연구 결과와 통계자료가 말해준다.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전체 신규 청년취업자의 43%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때, 퇴사하는 이유로 조직 내 관계의 부재나 악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 특히 리더와 부하직원의 관계는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리더십 학자 그레인과 울비엔은 LMX이론Leader Member Exchange에서 리더와 구성원 간의 관계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를 통해 증명했다. 친한 집단을 내집단(In group)으로 그 밖의 집단을 외집단(Out Group)으로 구분할 때 내집단 구성원들의 조직 몰입도가 높고 직무에 더 만족했으며 자발적인 참여가 많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Graen & Uhl-Bien,1995). 


이러한 관계의 원리는 구성원 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업하는 관계에서도 세부적으로는 달성의 기준과 방식이 달라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관계의 질을 높여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믿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행동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최선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협의점을 찾기가 쉬워진다. 


관계 형성을 위한 필수요소로 많은 학자들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솔직한 ‘자기 노출self disclosure’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의 ‘선한 의도’를 믿을 때 오해나 비난을 염려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믿는 마음을 ‘본질적 신뢰’라고 한다면, 상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한 의도를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바로 에드먼슨의 ‘심리적 안전감 psychological safety’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경험적으로 알 때, 상대의 실수를 무작정 덮어주지 않고도 따뜻한 조언을 건넬 수 있고, 이러한 진정성 있는 교류가 관계의 밀도를 높인다.


 to be continued... '무심한 관점'과 '맹목적 관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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