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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Jan 06. 2021

산전수전 공중전의 전리품?

사람보는 눈 (2)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두가지 비결

https://brunch.co.kr/@jinon/8   사람보는 눈(2)의 사례는 저의 이전 글 ' 사람 보는 눈'을 인용하였습니다.


1. 관계를 살리는 ‘정서적 노력’

상대방의 인간적인 선함을 보려는 노력


L대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꼼꼼 대마왕으로 통한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수 덕분에 신입사원 Y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일이 많다. 하지만 유능한 사수 밑에서 일을 배우니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동기들을 볼 때마다 Y는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사실 L은 늘 맡은 업무만으로도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 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Y가 첫 결산업무로 정신없이 허둥지둥하던 날에도 L은 뒷자리에서 간간히 알아듣지도 못할 훈수만 둘뿐 쩔쩔매는 후임은 본체만체였다. '대리 나부랭이'가 갑질을 한다고 한참을 중얼거리는데 L이 슬그머니 와서는 헤매던 부분을 콕 짚어 도와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사수의 도움으로 무사히 해결한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좋은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우리는 관계를 위한 ‘정서적 노력’을 게을리한다. 상대방의 선함을 보려는 의도적인 노력 없이 좋은 감정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말은 관심을 가지고 오래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서 인간적인 선함을 보려는 노력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긴다. 반대로 나쁜 의도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오래 보면 오히려 역효과다. '대리 나부랭이'가 '과장 나부랭이'로 진화할 뿐 시간이 흘러도 관계는 절대로 개선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상대방의 사적인 영역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사적인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잘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계의 질은 상대방을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로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 자신과 상대하는 역할이 아닌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할 때 그 사람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로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관계가 시작된다. 이런 느낌이 연민으로, 애정으로, 보살핌으로, 감사로 확장된다. 인간적인 관심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시작된다. 



지금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다음을 생각해보자.  


    그가 무엇을 자랑스러워 하는지 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가 난감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가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의 최근 관심사를 알고 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의 장점을 세가지 이상 안다.
     1.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의 역할과는 무관한 위의 질문에 얼마나 자유롭게 답할 수 있었는가?

다섯 가지 질문을 직접 물어보는 것을 제외하고,

더 많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만 떠올려보자.





밤 하늘 

별빛이 조금씩 커졌다 작아졌다.

산너머 마을은 어두웠다 밝았다. 




2. 관계를 살리는 ‘다양한 관점’

다양한 관점으로 상대를 보려는 노력



P는 이번 달부터 해외 사업장에 파견되어 현지 외국인과 함께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이상 함께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그는 팀원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간단한 성격 테스트를 실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저기, 혈액형이 어떻게 돼요?”


자신은 (A형처럼 소심한) B형이라 상대방은 (성격 좋은) O형이기를 은근히 바랬다. 최소한 (깐깐한) A형은 아니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상대방의 혈액형은 그의 바람대로 O형이었다. “it’s O.”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다.


“Vampire?”  ( 흡혈귀가 아니라면 대체 혈액형은 왜...? )




혈액형은 처음 보는 사람을 대놓고 넘겨 짚는 좋은 수단이 된다. 나는 통념과는 달리 소심한 B형인 데다가 의외로 깐깐한 O형을 매일 만나고 있으면서도 혈액형에 관한 믿음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다. 구닥다리 미신인 줄 알면서도 내가 O형인 동료에게 시원시원한 결단력을 기대하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물 간 말장난에도 영향을 받는다. 혈액형 미신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나에게 촌스럽다고 면박을 준 동료가 분명, 자신이 A형이라 소심한 면이 있는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한눈에 간파당할 만큼 단순한 존재로 여기지 않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로도 소심한 사람, 대범한 사람, 깐깐한 사람 등으로 금세 사람을 구분하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초능력을 ‘편견’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보기도 전에 판단하고, 그대로 믿고, 믿는 대로 본다. 이런 초능력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할수록 진실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더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설령 완전히 잘못 짚었어도 마찬가지다. 보는 관점을 유연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잘못된 판단이 시야를 가린다.



산전수전 겪고 나니 이제는 사람을 척 보면 안다?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모두가 제각각이니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자신이 변하면 된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체념하듯 분풀이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어도 상대방의 내밀한 속사정만은 알 길이 없지만 ‘척 보면 안다’는 말로 더는 상대방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철벽을 두른 그의 다양성은 자신이 상상하고 경험한 것에서 멈춰버린다.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관점은 절대로 확장되지 않는다. 편견을 줄이려면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겉으로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틀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여 쓰는 것에는 지나치게 예민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말로만 다르고 머리로는 틀렸다고 인식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모른다. 편견을 줄이는 것은 이처럼 꽉 막힌 생각을 다양한 관점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상적인 완결의 상태라기보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편견이 있다’ 혹은 ‘편견이 없다’ 라는 완결의 상태는 애초에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의 관점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다양한 선입견을 놓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여 얻은 것을 ‘이성’이라고 하고, 이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검증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성’은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그것을 검증하면서 얻어진다. 그리고 사실을 정확히 검증할 만큼 경험이 충분하지 못할 때 우리는 편견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자신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자신이 경험하여 아는 것 너머의 사실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이성이 제대로 작동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편견은 우리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학습을 통해 발생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In group)과 그 밖의 집단(Out group)을 구분하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반복된 경험에 의해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굳어져 습관화된 것이 편견이다. 아래는 편견이 발생하는 여러가지 원인을 기준으로 자신의 편견을 검토할만한 문항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다음을 생각해보자.

누가 떠오르는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는 어떤 사람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인가? (여러번 생각을 반복해보자)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있는가?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니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것인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는 충분한가?  

    검증의 절차가 충분했다면, 어떤 방법이었는가?  

    그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함께 떠오른 것이 그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가?  

    그 혹은 그가 속한 집단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가?  

    그 혹은 그가 속한 집단에 질투나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편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한 때 아주 확실했던 것이 나중에 오해나 거짓으로 밝혀진 경험이 있는가?




진실의 가장 큰 친구는 시간이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은 편견이며

진실의 영원한 반려자는 겸손이다. 


- 찰스 칼렙 콜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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