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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Dec 27. 2020

완벽한 김부장의 속사정

타인 지향적 완벽주의 : 나의 기준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사람들






앞서 ‘자기 지향적’ 완벽주의자와 ‘사회 부과적’ 완벽주의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식이었다면 지금부터 이야기 나눌 ‘타인 지향적’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완벽한 기준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고,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오래전 나의 상사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의 폰트와 자간을 일일이 조절하여 끝단을 맞추도록 지시했는데, 다들 그 디테일을 ‘(표현을 순화하여) 박음질이 정교한 걸레짝’에 비유하곤 했다. 그는 보고서 폰트에서부터 사소한 업무처리 프로세스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강박적인 기준에 맞추기 원했다. 타인 지향적 완벽주의자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자신의 ‘완벽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패의 원인을 돌린다. 자신은 완벽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외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로 협력하는 과정조차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다보니 정작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다른 사람의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한다.



강박적인 완벽주의는 이같은 비합리적인 행동 외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조직에서는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책임감에서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직에서 항상 경쟁의 압박을 느끼는 리더에게 완벽주의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출처 : https://employee-performance.com/




 G는 오늘도 화가 치미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PC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달부터 TF팀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차출된 인원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막상 일하는 모습을 보니 영 성에 차지 않는다. 그는 지난주 마감 기한을 놓친 적이 있는 S에게 매일 업무의 진행 상황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보고하도록 지시했고, 일은 곧잘 하지만 자신이 지시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 P에게는 수시로 잔소리 폭격을 퍼부었다. 시키는 일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 K에게는 일일이 지시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이번에는 S의 오전 보고가 너무 형편없어서 모니터 앞에서 점심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호출했는데 S가 사사건건 밉상인 P와 휴게실에서 노닥거리는 것을 보니 화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회사의 관심이 온통 TF팀에 쏠려있는데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불안한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 사람 좋은 K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들 자기 일 좀 똑바로 해!



G는 최근들어 자신이 직접 업무를 챙기지 않으면 일을 망칠 것만 같아서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차라리 직접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업무 범위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주 주간 회의에서는 성과에 대한 기대와 압박을 받고 있는 데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은 악질상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지금까지 맡은 일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 와 남은 것은 동료들의 비난과 성과에 대한 불안감 뿐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강박적인 완벽주의는 조직과 구성원에게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힘들게한다. 자신의 완벽주의가 서서히 강박적인 사고방식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90년대 이후 성과중심 사고방식을 돌아보는 차원에서 건강한 완벽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건강한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성취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도 기꺼이 공유한다. 과도한 목표에 좌절하거나 강박적인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한 결과로 현재의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의 한계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경쟁을 부추기고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완벽주의의 덫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은 자신을 돌보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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