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불편함의 진실
나는 불편한 사람이다.
필요하지만 불편한 말들을 계속 꺼내기 시작했고 점점 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듣고 싶은 달콤한 말, 말하길 바라는 정석의 말들을 하며 지나갈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내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불편러가 되었다.
이 글은 불편한 사람, 불편한 것들에 대해 이제껏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는 시간을 만들 것이다. 모두 읽고 나면 기존에 알고 있던 생각이 바뀌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나만의 묵직한 무기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세계에 남을 것인가 VS 진실을 마주하고 진짜 세계를 마주할 것인가?
역사상 가장 불편한 위인이 있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현실 세계에는 일론 머스크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내뱉는 언변으로 불편하게 만들었고, 일론 머스크는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들로 세상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밖에 불편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로 소크라테스, 코페르니쿠스, 니체까지 모두가 주위를, 세상을 불편하게 했다. 세상을 뒤흔든 이들은 모두 당대의 가장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불편해했을까?
소크라테스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리지 않고 그들의 무지를 끊임없이 외쳐 불편하게 했다.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1분 안에 하지 않으면 면박을 주어 불편하게 하고, 때론 그 자리에서 해고를 외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두가 하늘이 돈다고 믿는 세상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진실을,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꺼내 세상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종교집단으로부터 극단적인 저항과 함께 불편함을 일으켰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소크라테스로 인해서 사람들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개념을 알면서 지적으로 훨씬 더 똑똑해질 수 있었다. 스티브잡스는 간결하고 심플함의 결정체인 아이폰을 만들어내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코페르니쿠스는 결국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증명했고, 엄청난 과학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불편함이 세상의 편리함을 만들어주었다.
지금 우리는 그 불편한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불편함을 일으킨 그들의 오만함과 까칠함을 비추고 비난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철학,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코페르니쿠스의 과학까지. 그들이 세상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만든 '결과물'과 그들이 외친 '메시지'를 찬양한다.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지 않고 위대한 인물이 될 생각이 1도 없다면 굳이 불편해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이름을 떨치고, 나의 존재를 새기고 싶다면 기꺼이 되어야 한다. 불편한 사람이.
불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편이 '불안' 또는 '불만'이라는 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편의 반대말은 뭘까? 편리? 편안? 만족? 많은 이들은 편안해하고 싶다. 몸의 자세, 심리적 상태, 본인의 사회적 포지션, 가진 자산 그 모든 것으로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도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너와 나, 우리가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 지켜야 할 룰이 한 가지가 있다.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불편한 말을 하지 않는 것.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그렇게 세상은 오랫동안 불편한 말, 불편한 상황, 불편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럼 불편한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지양해야만 하는 것일까?
불편한 것을 피하고, 편안한 것만 찾아 지속하면 더 나은 내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불편한 사람> 시리즈에서는 '불편함'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그동안 가져온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불편을 무기로 만드는 법에 대해 담아보려 한다. 불편을 무기로 만드는 방법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그게 가능한 걸까?
불편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의해 본다.
불편한 사람이 전하는 말에는 불편함을 감당하고서라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많은 다수의 이들은 불편한 순간을 마주하고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걸 내색하는 순간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감당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속으로는 내심 누군가가 불편한 말을 나를 대신해 꺼내주길 원한다. 그런데 막상 불편함을 꺼내는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지지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에서는 거리 두기를 한다. 불편한 사람은 분위기를, 상황을 불편하게 만든 자가 되어 '눈치 없는', ' 사회화가 부족한'이라는 비주류의 타이틀을 갖게 된다. 불편함을 피한 사람들은 불편러를 지지할지 거리를 둘지 많은 내적 고민을 한다.
흔히들 어른은 참는 거고, 참지 못한 것을 어리다고 말한다. 그럼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을 보고 알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 참는 것일까? 알몸을 알몸이라고 말 한 어린아이가 잘못된 것일까? 어린아이의 말이 없었으면 모두가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때로는 불편하게 할지라도 진실을 말하는 누군가는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의라고 하고, 누군가는 팩트폭격이라 하고, 누군가는 진실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의, 팩트, 진실이라는 다음 단어를 갖기 전까지는 그저 '불편한 말'에 머문다. 그 말에 머무는 시간을 버티고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해야 진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불편함을 안고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옳을 때도, 그를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로 불편함을 꺼내서 말할 수 없다. 자신감을 가져야만 필요할 때 불편함을 품고 던질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영원히 마음속에 품고 지내면 그것이 사그라들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점점 더 썩고, 커져서 병들어 어둠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불편하더도 자신의 안에 있는 메시지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 안의 세계를 잘 가꾼 채 신념이 담긴 불편함을 꺼내는 내적 자신감이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
불편하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더해 편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없애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를 던지는 것이다.
총 10개의 글에 걸쳐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감정, 불편한 사람에 대한 나의 과거와 진실을 꺼내보려 한다. 불편한 글 속에 당신과 세상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사람> 프롤로그
초인
이 시리즈를 통해 아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이 답을 찾아서 나를 세상에 던지는 무기로 활용하고 싶다면, <불편한 사람> 시리즈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불편한 사람인가요?
불편한 사람은 안 좋은 걸까요?
불편한 사람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불편한 사람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까요?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까요?
<불편한 사람> e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