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동굴에 갇혀 마늘만 먹게 된 호랑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코로나 시대,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생존기
옛날 옛적 호랑이는 마늘 먹다 말고 동굴을 나갔지만
이 시대의 호랑이는 마늘을 먹으며 꿋꿋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여기에도 동굴 속에 살아가는 한 호랑이가 있다.
599일의 재택시간 동안 호랑이는 마늘을 먹고 살아오고 있다.
동굴(집)에서 어떤 마늘(라이프)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호랑이, 동굴에 갇히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재택 지령이 내려왔다.
다시 지침이 있을 때까지 재택 하라는 지시령
세상은 급격히 혼란스러워지고 있었고
갑작스런 상황에 얼얼한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 그럼 집으로 출근해야 하네?
이제 그럼 일하면서 밥 먹어야 하네?
더 나아가 이런 생각들도 들었다
집에서 업무몰입, 과연 가능할까?
회의는 어떻게 하지? 업무보고나 피드백은?
모든 것들을 동굴 안에서 혼자 지내며 해나가야 했다.
'일'이라는 마늘, '생활'이라는 마늘, '소통'이라는 마늘
온전히 동굴에서, 이 마늘들을 먹으며.
나는 호랑이띠인데,
옛날 옛적 시조 호랑이님은 마늘을 먹다 결국 나가셨지.
나는 동굴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하루 이틀 쌓여 어느새 599일이 되어버렸다.
1년 하고도 7개월 그리고 보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동굴 속 호랑이는 잘 살아 있을까?
호랑이는 어떤 마늘들을 먹어왔을까?
이전의 동굴 바깥을 살던 호랑이는 이제 온전히 동굴 안에서 살아가야 했다.
'일'이라는 마늘
먼저 '일'이라는 마늘을 꺼내보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살기 위해 마늘 (라이프)를 먹어야 하고
세상의 룰은 동굴 (집)에서 머물기이다.
이 룰을 어겼다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처럼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먼저 '일'이라는 마늘 먹기부터 적응해야 했다.
처음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얼굴 보고 소통할 것도 메일로 쓰고,
다 같이 모여했을 법한 회의나 미팅도
줌이나 카카오 보이스콜로 회의를 해야 했다.
각자의 동굴에서.
그리고 정해진 업무 시간은 10시부터 7시,
보는 사람은 없지만 셀프로 이 룰 안에서
스스로 패턴을 만들어야 했다.
각자의 동굴에서.
동굴의 빌런 등장
누가 점심시간이란 걸 알려주지도 않고,
스스로 점심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뜻밖에 가장 큰 빌런은 바로 옆 소파였다.
동굴 한가운데 커다란 원테이블이 있어, 여기서 일 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는데
(마치 동굴의 아지트 테이블 같은?)
조그마한 동굴이다 보니 그 옆에 딱 두 걸음만 가면 소파가 하나 있다.
그 소파가 가장 달콤한 유혹의 빌런이었다.
밥 먹고 잠깐 눕고, 온라인 미팅 마치고 한 번씩 눕고
문제는 눕고 나면 딱 5분만! 이라 마음먹었던 시간이
10분이 되고 20분, 30분이 된다는 사실.
점심을 먹고 나면 한 번씩 누워줘야 하고
일에 지쳐 머리가 지끈거릴 때면 역시나 잠시 누워 식혀주고
그렇게 소파의 루틴이 생겨난다.
미국 사람들은 그걸 카우치 포테이토라고 하여
감자칩을 먹는다는데 동굴의 카우치에선 뭘 먹든 달콤하다.
소파라는 달콤함, 거기서 먹는 끝없는 달콤함과 싸워가야 했다.
밤에 출몰하는 호랑이
동굴 밖으로 나가 일하던 시절과
동굴 안에 머물고 일하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일하는 패턴'
재택을 하니 내가 회사의 시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일을 내 시간에 온전히 맞추다 보니 동굴 속 나만의 패턴이 생겨난다.
오전에는 멍을 때리며 휘적휘적 큰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쳐내야 할 일들을 호다닥 해치우고
그리고 저녁에야 뭔가 기획하거나 정리하는 집중도 있는 업무를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게 재택을 하면서 야근을 일삼게 된다.
때로는 열두시? 한시? 회사에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종종 만나기도 한다.
500일이 넘는 시간의 재택을 하다 보니, 출근러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좋겠다. 집에서 일하면 ㅠ 칼퇴, 아니 매일 조기퇴근각?"
"아니.. 야밤에 일하는데..?"
아이러니하게 동굴 안에서 야밤에 일이라는 마늘을 먹는다.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 10시부터 7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동굴생활을 처음 할 때 느꼈을 이질감이 또다시 느껴질 거 같다.
지금 멍 때려야 하는 시간인데..? 그런데 치열한 회의를 해야 하고.
지금 일 막 쳐내야 하는 시간인데? 그때 릴렉스한 팀미팅이 있고.
지금 한창 기획안 써야 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회식을 하게 될 테니깐.
그렇게 일이라는 마늘은 동굴의 시간에서 다른 시계로 바뀌어 간다.
동굴 밖은 전쟁터
생각지 못한 좋은 변화도 있다.
피치 못하게 오프라인 대면으로 미팅을 해야 할 때,
이따금씩 동굴 밖으로 나가 회사를 가게 된다.
이상하게 그때의 출근길은 예전 동굴 바깥 시절 느끼던 그 무거운 느낌이 아니다.
산뜻하게 산책 가는 기분?
회사 가는 지하철 안이 신비롭고, 거리 거니는 사람들이 반갑기도 하다.
그리고 이따금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이전에는 매일 익숙했던 일상이 이제는 가끔 맞이하다 보니
그 시간이 뭔가 소중하고 아련하다.
그렇게 가끔 나가는 길에 좋은 기분 들다가도
어쩌다 출퇴근 시간과 겹쳐 많은 인파와
함께하게 될 때는 다시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지하철에서 땀을 한 움큼 흘리고, 이리저리 부딪치고 나면
다시 동굴로 숨어 들어가고픈 욕망이 온몸에 퍼져 든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동굴 안에서의 일상이 다시금 달콤하게 다가온다.
이 힘든 오가는 길을 동굴 바깥 시대에는
아침, 저녁으로 매일 어떻게 반복했었지?
599일의 시간
그러기를 한 달, 석 달, 1년.
그렇게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둘 세상의 호랑이들이 세상 바깥으로 복귀를 하는 동안
여전히 여기 이 호랑이는 동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프로재택러'가 되어 있었다.
온라인 미팅을 수도 없이 진행하며 노하우를 쌓고
이제는 얼굴 보지 않고도 슥삭슥삭 업무를 진행하고
대화하듯 메일을 쓰며, 새로운 소통방식에도 적응해간다.
다시, 세상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호랑이는 다시 그 시절에 적응할 수 있을까?
처음엔 동굴에서 마늘 먹는 게 낯설었는데 어느새 익숙해지고
이제는 다시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해야 한다면 그게 되려 어색하지 않을까 싶다.
동굴 밖에서 살아가던 시대에서, 동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로.
그렇게 호랑이는 일이라는 마늘을 먹으며 599일째 살아오고 있다.
이 이야기는 마늘을 먹고 살아가는 동굴 속 호랑이의 이야기다.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일 마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른 마늘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식량이라는 마늘
사람이라는 마늘
놀이라는 마늘
술이라는 마늘
돈이라는 마늘
패션이라는 마늘
생필품이라는 마늘
잠이라는 마늘
말이라는 마늘
호랑이의 동굴 생존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