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동굴에 갇힌 호랑이는 뭘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코로나 시대,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생존기
옛날 옛적 호랑이는 마늘 먹다 말고 동굴을 나갔지만
이 시대의 호랑이는 마늘을 먹으며 꿋꿋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여기에도 동굴 속에 살아가는 한 호랑이가 있다.
599일의 재택시간 동안 호랑이는 마늘을 먹고 살아오고 있다.
동굴(집)에서 어떤 마늘(라이프)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동굴에서 뭐 먹고 살아가지?
재택의 시대를 맞이해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세상의 룰은 동굴에서 머물기이다.
이전에는 어쩌다 저녁 한 끼, 주말의 끼니만 생각하면 되었다.
동굴 밖에서 대부분 다 해결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혼자서, 동굴에서 다 해결해야 했다.
나는 혼밥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그건 밖에서 맛있는 식당을 찾아
그때마다 끌림이 있는 곳에 가는 나름 낭만 있는 식사였다.
하지만 이건 생존의 차원.
매일 아점, 간식 그리고 저녁까지
매번 끌림이 있는 대로 먹을 수는 없다.
그럼 만들어 먹어야 할까?
조리는 종종 하는데, 요리를 자주 하진 않는다.
시작은 HMR이었다.
가정 간편식이라고 하는데 '가정'이라는 말이
참 그럴싸하게 냉동음식을 예쁘게 포장하고 있다.
뜯어서 냄비에 끓이거나, 프라이팬에 그대로 볶으면 끝.
사실 '간편'이라는 방식이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온갖 종류의 HMR 섭렵을 시작
한번 장을 볼 때면, 일주일치 식량을 담아 냉장고 냉동실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점심, 저녁 또다시 점심 저녁 한끼.
동굴의 테이블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일을 하고, 밥 먹고.
그러다 보니 온갖 브랜드별 라인업부터 신제품까지
한 번씩 모두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예전에 좌담회? 라고 해서 특정 카테고리를 주제로 심층 인터뷰를 하는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HMR로 썰을 풀면 어디 가서
한 이야기 할 수 있는 수준 정도 오른 듯하다.
그중에서도 베스트를 꼽으라면 비비고, 그리고 피코크
포장 냉동음식의 한계를 넘어선 뛰어난 역작들이다.
제법 식당 찌개의 맛에 가깝고, 꽤나 맛있는 다양한 냉동볶음밥을 선보인다.
(많은 1인가구나 재택러들이 여기에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한 끼는 낙지볶음밥을
한 끼는 김치찌개를, 한 끼는 애호박 된장찌개를 먹으며
HMR을 메인 푸드로 동굴을 살아간다.
배달음식은 먹지 않아, 다만
다른 동굴의 호랑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소식을 들어보니 동굴 속 세상이 찾아오고 나서 배달음식이 엄청나게 흥행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치킨, 피자, 짜장면을 넘어 이제는 모든 음식점의 메뉴들이 배달 되고
이제는 배달음식이 가서 먹는 것보다 더 규모도 커졌다고 할 정도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달음식은 철학상 잘 먹지 않는다.
배달하는 동안 다 식어버려 맛이 없게 되어버리니깐.
그리고 이상하게 가서 먹는 것보다 배달해 먹는 것이 더 감흥이 적다.
유일하게 먹는 배달은 이따금 먹는 치킨 정도?
맨날 HMR 먹는 동굴러가 희한하게도 배달음식은 저 멀리 살아간다.
배달음식 대신 찾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선배달.
그 중에서도 배달회 그리고 배달고기를 시도해본다.
그중에 특히 신선육 정육각은 센세이션한 맛을 안겨준다.
고깃집보다 더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신세계,
그리고 정량으로 조금씩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HMR 두끼에 배달고기 한끼, 이렇게 몇 달을 살아간다.
그러기를 다섯 달,
5개월 X 30일 = 150일
하루 두끼로 잡았을 때 300끼니를 그렇게 먹고 나니 질리지 않을까?
생각보다 그럭저럭 먹고 살아갈만하다.
처음에는 HMR에 선택 항목이 많았던 것이 매력적이었다면
이제는 동굴 속 생활이 익숙하고 루틴이 반복되면서 몇 가짓수로 줄어든다.
김치찌개, 목살고기, 낙지복음밥 거의 이렇게 3가지의 반복.
예전에 혼자 사는 친구 하나가 새우볶음밥을 1년 치 사다가
냉동실에 가득 채워놓고 매일 그것만 먹었다 하여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약간은 공감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질리거나 물리거나 그런 것보다
다른 하나의 문제가 생겨버렸으니, 바로 쌓여가는 칼로리!
집에만 머물다 보니, 매 끼니를 고열량 간편식으로 먹고 나니
나도 확찐자, 그 일원의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매 끼니마다 심한 공복이 찾아오고, 밥을 먹으면 항상 졸렵고
(특히나 동굴에는 소파라는 빌런이 있어 언제나 위험이 도사린다)
특히나 회사에 있을 땐 먹지 않을 간식들이 점심 후에
마치 매일 루이 16세의 후식 코스처럼 필수로 찾아온다.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 어느 날은 과자 한 봉지, 꽈배기 도너츠...
(이중에서 특히 회사에서 안 먹을, 그러나 마력적인 봉지과자가 또다른 빌런)
그렇게 열 달의 시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니 확찐이 극에 달한다.
그렇다고 견과류나 요플레, 바나나 1개
이렇게 감량하는 사람처럼 먹을 수는 없을 노릇.
그리고 큰 결심을 한다.
오늘부터 1일 1끼
극단적인 1끼는 아니다.
한 끼는 아주 가볍게, 한 끼는 먹고 싶은 메뉴로 정량으로.
처음에는 배고픔에 힘겨웠으나,
쓰는 에너지가 별 없어선지 점점 몸도 적응해 간다.
점심을 양껏 먹으면 저녁을 건너고,
점심을 두유 하나로 먹고 나면 저녁을 찐으로 먹고.
그렇게 다시 한 달 두 달의 시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예전 미국의 한 현직 장군이 매일 조깅을 하고, 저녁 1끼만 먹는다는 내용과 함께
정신이 온전히 맑게 유지할 수 있어 적극 추천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배고파서 정신 맑아지기 어렵겠는데?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1년 내내 볶음밥 먹는 자취남 친구부터, 1일 1끼 전도사 미군 아저씨까지 공감하는 동굴 속 프로공감러)
점점 가볍게 먹거나 끼니를 넘기며 느껴지는 공복도
약간은 즐길 수 있게 되고, 몸이 가벼워진 상태로 동굴에서 지내는 것이 상당히 익숙해졌다.
TV 속 어느 데이트 프로그램에서 나온 남성 출연진이 공복의 느낌을 즐기는 편이라고 했었는데
그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동굴에 머물면서 다양한 타입의 먹는 사람들을 두루 이해하게 된 것도 어떤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확찐 호랑이의 체중은 줄어들고,
4키로에서 5키로가 넘게 줄고 나니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볍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HMR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
영원히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동굴급식이었는데.
그와 함께 새로운 변화가 있으니 이따금 회사를 가거나,
동굴 밖에서 식사를 먹을 때 스몰푸드라 하는 가벼운 음식을 접하게 된다.
세상이 닫혀 있는 사이, 샐러드나 신선푸드와 같은 종류의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지고
또 그런 음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들을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다.
왠지 샐러드라고 하면,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이나
저는 채식만 해요, 하는 철학과 소신을 가진 분들이 먹을 법한 음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류의 음식들을 한끼 두끼 먹고,
또 이집 저집 다양한 곳을 가보고 나니 신세계가 열린다.
풀 먹는 호랑이
그곳에 꼭 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곡식류에 과일이 풍부하고, 거기에 고를 수 있는 소스도 별미다.
연어, 소고기, 닭고기 원하는 것들도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동굴에서 그걸 매번 접할 수는 없어서
나중에는 재료들을 사다가 동굴에서 만들어 먹는다.
트러플바질에 토스트와 거기에 계란을 담고
루꼴라와 함께 단백질 드링크까지, 이렇게 훌륭한 한 끼가 된다.
단호박은 간단히 데우기만 해도 견과류와 함께 맛있는 스몰푸드가 된다.
저도 샐러드 좀 해요.
나도 뭔가 철학과 소신을 가진 사람 같아 보일까?
그렇다고 극단적인 초식주의나 채식주의는 아니다.
여전히 먹고픈 간식도 먹고, 동굴 밖에서 이따금
고칼로리 푸드로 정신건강을 적절히 달래주고 있다.
초반에는 집에서 잘 먹지 못하는 곱창이나 꼼장어
이런류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벼워진 몸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풀 음식들의 찐매력에 눈뜨고 나니
요즘 사람들이 요즘 왜 점점 더 초식을 찾고,
샐러드류가 뜨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어디 가서 샐러드 맛집, 홈샐러드 이야기하면 꽤 이야기할 수 있겠다. HMR 덕후의 놀라운 변화가 아니한가!)
예전을 떠올려보면 동굴 밖을 살아갈 때, 배 한가득 채우는 점심과 저녁
그리고 술을 먹을 때 1차, 2차 그리고 3차까지 먹던 익숙한 일상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속이 허해서 국밥 한 그릇으로 깨끗이 마무리하던 그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조금은 과했던 거 아닐지?
다시 예전 시대로 돌아간다면, 이제 바깥에서 어떤 음식을 메인으로 먹고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599일의 시간 동안 HMR부터, 1일 1끼를 거쳐 스몰푸드를 먹는 호랑이가 되기까지
식량이라는 마늘의 변천을 거쳐 이후에는 먹는 일상은 또 어떻게 바뀌어갈까?
식량 마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른 마늘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이라는 마늘
놀이라는 마늘
술이라는 마늘
돈이라는 마늘
패션이라는 마늘
생필품이라는 마늘
잠이라는 마늘
말이라는 마늘
호랑이의 동굴 생존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