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호랑이

하루아침에 동굴에 갇힌 호랑이, 어떻게 술 마시며 살고 있을까?

by 마케터초인

코로나 시대,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생존기


옛날 옛적 호랑이는 마늘을 먹다가 동굴을 나갔지만

이 시대의 호랑이는 마늘을 먹으며 꿋꿋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여기 동굴 속에 살아가는 한 호랑이가 있다.

599일의 재택시간 동안 호랑이는 마늘을 먹고 살아오고 있다.

동굴(집)에서 어떤 마늘(라이프)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닮은 동물이 있다.

누군가를 보면 사슴이,

누군가는 소가, 또 누구는 쥐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눈에 비추어 나는 어떤 동물로 보일까?


내가 나를 바라본,

아니 나를 바라보고 싶은 동물이 있다면 호랑이다.

왜 많은 동물 중에서도 호랑이일까?

먼저 가장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가 호랑이이다.

어릴 적 종종 맹수의 왕을 논하며 논쟁을 하는데

사자냐 호랑이냐 하면, 항상 호랑이를 응원했고

누군가 사자가 호랑이를 이긴다고 하면

속으로 씩씩대곤 했다.



1986년, 호랑이


그리고 여러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먼저 태어난 해가 호랑이띠이고

이름에도 '호'가 들어가고

(진실로 어릴 때까진 내 이름의 호가 범'호'자 인줄 알았다는)

10대 내 소울을 지배한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한다면

모든 음반을 수집하며 매일같이 들었던 드렁큰타이거.

억지라면 억지고,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게

자꾸만 연계되는 호랑이.


단군 신화를 보기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는 긴긴 시간 동안 동굴에서 마늘을 먹고 버틴

곰이 위너요, 먹다가 뛰쳐나간 호랑이는 루저라고 한다.

이야기 속 참을성이 없는 캐릭터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호랑이는 불행했을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정말 괴롭고 힘겹고 죽을 것 같아서 동굴 바깥을 뛰쳐나갔을까?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채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되는 것과

밖에서 마음껏 사냥하고 자고 마시며

본인의 행복대로 사는 것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고, 무엇이 우월한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걸까?


곰이 위너고, 호랑이가 루저라기보다는

각자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맞는 시선인 것 같다.

그래서 뛰쳐나간 호랑이는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생을 살았을 거라고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전설 속의 호랑이님은 자신의 길을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기 이 호랑이는 길을 선택할 수 없다.


바이러스로 혼탁해진 세상에 동굴에 머물러야 하고,

동굴에서 일하게 되면서 혼자 머물러 지내기를

몇 달, 1년 그 이상의 시간.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지 못하고,

늦은 시간 밖에서 먹고 마실 수 없고

사람들과 오롯이 모이지도 못한다.


어느 봄, 야외에 나가서 한가득 싸간 음식과 함께

오이에 진토닉을 말아먹고 마시던 그 순간,

여름날, 맥주를 한 손에 든 채 땀 흘리며 몸을 흔들고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만끽하던 그 순간,

가을에 와인 바리바리 싸들고 짐을 한 움큼 싸가서

야외에 재즈를 들으며 누워서 취김에 몽롱하던 그 순간,

겨울에 와글와글 모여서 파전에 막걸리를 쏟아내고

집에 가는 길 허한 속을 채우던 소주에 순대국의 뜨거운 한입,


그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렇다, 중학교 때 드렁큰타이거 음악을 워낙 많이 들어서인지

술 취한 호랑이 서정권 타이거 JK라는 이름이 우상처럼 머리에 박혀있었고

어느새부턴가 나는 술을 좋아하는 호랑이띠 청년이었다.


20대, 패기롭게 때론 객기로 격하게

30대, 슬슬 술을 알아가고 넓혀가며

그렇게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오는 게 낙이었는데

커다란 낙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동굴에는 BAR가 있었다.

이 동굴에 올 때, 좋아하는 술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원 없이 마시고 싶어 만들었던 공간이었다.

바깥세상에서 BAR를 가면 칵테일 몇 잔만 먹어도

영수증의 숫자가 금새 커지고,

제대로 된 보틀 몇병 먹으려면 다짐 한번 필요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면세점 오가며 샀던 술들,

좋아하는 술을 말며 익힌 몇 가지 기술들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러던 찰나에

하루 아침에 동굴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그 공간에서 살고, 그 공간에서 먹고 일하고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살아가게 될 줄은.




혼술을 해볼까?


BAR까지 만들어놨지만, 정작 '혼술'을 많이 하진 않았다.

이전에는 맥주 한두 잔이나 반주로 가볍게 먹는 정도?

그렇게 점점 위스키를 한잔 두잔 먹고, 손님들이 왔을 때 만들법한

칵테일들을 혼자서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원칙은 있었다. 일 하는 낮에는 먹지 않기.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오후 6시 이후에 마시기.

(그리고 술 먹고 취해서 사람 찾지 않기. 흑역사각)


그렇게 어쩌다 혼술러가

본격 혼술러가 되어 갔다.


회를 주문해서, 격에 맞춰 사케를 마시고.

커다란 연어를 사서 썰어다가, 헨드릭스에 진토닉을 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땐, 수정방과.

위스키는 언제나 스트레이트, 글렌피딕 18년산으로.

시장에서 석화를 잔뜩 사서, 샤블리에 한잔.

가볍게 반주로는 빅웨이브와.


그렇게 혼술의 진화가 이어졌고, 나날이 달콤했다.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았고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들어

혼술의 순간들을 소소하게 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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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혼술러 #집술 #집술러


호랑이 혼술러



희한하게 마시면 마실수록,

다음 날 뭔지 모를 허함이 찾아오고

금요일 같은 날 마시지 않으면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술은 물이 아니니,

어느 순간 가진 걸 거의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이전에 마시던 술들은

나름의 저마다 스토리가 있는 술들이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에 사 온 술,

누군가 여행길에 사다준 술,

특별한 날 선물 받은 술,

나를 위해 과감히 지른 술.

그렇게 사연들이 담겨있었는데

술이 다 떨어지고 나니

편안하게 트레이닝복 입고 마트에서 사서 사는 술들로는

BAR의 곳간을 채우고 싶지 않아 졌다.


그리고 BAR는 빈병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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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상하게도 여러 술을

매일 같이 마시던 혼술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뚝 끊겨버렸다.


잘 안다, 한국으로 건너와 마트에서 사는 베트남 술이

직접 베트남에 건너가 시골 어딘가에서 사 온 베트남 술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란 걸.


하지만 이상하게 술장이 비어버리니, 그냥 빈 채로 두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의 혼술 일상은 끝이 났다.



그렇게 혼술러는 끝이었을까?


어느새 동굴에도 겨울이 찾아오고, 자연스레 지평생에 눈을 떴다.

나이가 들면서 알밤 막걸리는 달아서 못 먹고

장수도 이상하게 사이다맛이 나서 안 먹게 되었는데

지평생은 이상하리만치 담백하고,

마치 IPA 맥주를 마셨을 때

입을 탁 잡아주는 것 같은 진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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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정한 곳에서서 구해온 특별한 것이 아닌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또 어디에도 잘 어울렸다.

때론 탁한 홍어와 어울리고, 때론 파전에 맞춰

그렇게 한겨울을 지평생과 함께 했다.


그렇게 봄이 찾아오고 어느새 동굴의 생활도 1년이 지나

풀 먹는 식생활의 변화와 함께 지평생도 다시 떠나갔다.

지평생은 음식과 함께 있을 때, 겨울엔 빛 났지만

따신 날, 혼자 오롯이는 함께일 수 없었다.

(지평생과는 평생갈 줄 알았었다)



풀을 먹으며, 이제는 두유, 물, 우유

그리고 간혹 초코우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끔 찾던 맥주도 이제 마시지 않는다.

그 대신 여전히 개츠비 호랑이는

사람들이 동굴을 찾을 때만큼은 거나하게 마신다.


술은 같이 먹어야 제맛인 건가.

혼술력은 거기까지였던걸까.

충분히 다녀올 만큼 혼술판을 다녀온걸까.

동굴에 살며 술이 혼자 있을 때 다가왔고, 또 떠나갔다.

이후 몇 달간 혼자 있을 때 먹게 되지 않겠지만

또 언젠가 다시 바깥세상에 나가게 되었을 때

다시 자유로이 혼술을 마시고

편안하니 노닐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10이라는 시간제한에 급히 마시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술맛은 10의 시간이 넘었을 때, 더 진하다.



마늘 이야기 끝.





다른 마늘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패션이라는 마늘

생필품이라는 마늘

이라는 마늘

이라는 마늘


호랑이의 동굴 생존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