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던 프로젝트의 전말
1994년대, 디즈니가 브로드웨이 진출을 선언했다. CEO 마이클 아이스너로부터 그 해 대히트를 기록했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만들려는 미션이 내려졌다. 그의 생각은 최악의 아이디어로 여겨졌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토마스 슈마허는 '라이온 킹'의 뮤지컬화는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라. 라이온 킹 속 광활한 사바나 초원에 태양이 떠오르고 기린이나 물새 떼, 코뿔소, 영양, 미어캣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새로 태어난 어린 사자 심바를 맞기 위해 몰려드는 애니메이션의 첫 장면이 과연 무대에서 가능할까?
당시 인형극을 이용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던 사람이 있었다. 뮤지컬 경험이 전무한 30대 인형극 전문가 줄리 테이머를 영입해 수백억 원대의 프로덕션의 전권을 맡기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가면과 각종 소품, 의상으로 아프리카 동물들과 자연을 표현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차별화 포인트가 있었다.
1) 동물 캐릭터를 사람으로 대놓고 등장시키는 연출
2) (원작에는 없는) 웃음 짓게 하는 위트
동물의 탈을 쓰거나 인형을 조정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노출되고, 물소 떼와 같은 거대한 자연 배경은 오히려 후경으로 축소해 관객의 상상력을 끌어냈다. 그리고 원작에 없던 다양한 위트를 첨가했다. 말 그대로 비전형적인 무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이온 킹’은 199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해 지금까지 21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1억 10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처음 선보인 '라이온 킹'은 그보다 10년 먼저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의 매출액을 훌쩍 뛰어넘었고,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모든 영화와 뮤지컬 중에서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라이온 킹 뮤지컬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이걸 내가, 서울에서 보게 되다니.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이라는 생명의 순환을 주제로 아기 사자 심바의 성장담을 그리는 줄기는 그대로인 채로 완전 새로운 라이온킹을 만났다. 작품에는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차별화 포인트를 모두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인형극과 사람 연기, 아프리카풍의 미술이 뒤섞인 무대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들어온 OST를 생생한 노래로 듣는 건 영화만큼의 감동이었다. 여기에 더해 ‘동대문’과 ‘대박'등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말의 대사 위트는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하는 요소였다. (대구, 부산 공연에서는 그 지역의 명소를 들어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자막도 요즘 말로 담긴 번역 또한 인상 깊었던 부분.
예전만 하더라도 '가족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었고, 비싼 티켓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뮤지컬 공연은 사치로운 취미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성인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혹은 혼자서도 이런 류의 뮤지컬을 보고, 온 가족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서 보기도 한다. 이 문화에 큰 기여를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라이온킹 뮤지컬이고, 한국에도 그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앞서 담았던 뮤지컬 작품의 탄생비화를 알고 나서 봤더니 더 기억에 강렬하게 남겨진 경험.
그리고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What if.
젊은 연출가를 믿고 거액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온전히 사람을 감춘 채 온전히 동물만 드러냈다면 지금처럼 될 수 있었을까?
위트를 싹 빼고 진지하게 전통 뮤지컬처럼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히트 칠 수 있었을까?
역사에는 '만약에'가 없다고 하지만, 위대한 작품 그리고 위대한 콘텐츠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던 뮤지컬 라이온킹 탄생기.
커리어리에서도 매주 마케팅과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