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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27. 2019

지천명의 삶, 덕후의 삶

   " 하루 종일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유튜브가 그렇게 재미있어?"

우리 집 두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아들은 입을 다물고 남편은 손사래를 쳤다.

 " 아냐. 이거 좋을 거 없어.  안 하는 게 좋아. "

  순진한 나는 두 남자의 음흉한 눈빛을 읽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얌전히 집안일하며 식구들 잘 챙기는 현모양처에 만족하는 조선 여인에게 신문물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구한말 가부장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신문물 유튜브에 눈을 뜨면서 생긴 일이다.


  사실 나는 영화, 드라마는 좋아하지만 인터넷으로 동영상 보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간혹 지인들이 보내주는 동영상물도 마지못해 스크롤을 당기며 대충 보는 편이다. 궁금한 것은 텍스트로 된 인터넷 기사를 빠른 속도로 읽는 게 편하지, 몇 분짜리의 동영상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은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책, 인터넷 뉴스, 텔레비전으로 이어지던 나의 여가시간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유튜브 때문이다.


  내가 유튜브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 보고자 유튜브로 영어 강의를 좀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시작한 유튜브 보기가 나의 생활을  흐트러,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방탄소년단(이하 BTS) 유튜브 영상에 빠져들면서부터이다. 영어 동영상 유튜브를 보기 위해 휴대폰을 열었던 내가 어느 순간 BTS 동영상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된 지 한 달째인 나에게.  하늘의 뜻이 설마 이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때아닌 BTS 입덕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있다.


전조 증세는 한 달 전으로 돌아간다.

때는 12월 말.

 아들은 매일 밤 1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다. 예비 고3 엄마로서 아들이 올 때까지 거실은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늦게까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연말이다 보니, 텔레비전은 연일 연말 프로그램으로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렇게 연말 가요 프로를 보고 있는데 유독 나의 눈을 사로잡는 가수가 있었으니 바로 BTS였다.  워낙 유명하니 그 전에도 누구인지와 노래도 몇 곡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제대로 본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한다. 화면에 보이는 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빠져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발단은 나의 영어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나의 비루한 영어 실력에 수시로 학을 떼던 나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나의  영어 사춘기]라는 프로그램을 얼핏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새해를 맞아 그 프로그램의 영어 강사가 한다는 유튜브 인강을 듣고자 유튜브라는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유튜브 앱이 휴대폰에 기본으로 깔려있었지만, 나에게는 무늬뿐인 아이콘일 뿐 나 스스로 필요에 의해 들어가 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요즘 텔레비전마다 유튜버니 크리에이터니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유튜브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유튜브로 영어 공부 계획을 세울 때까지 나의 생활 패턴이 이렇게 달라져 버릴 줄 전혀 몰랐다.  


   드디어 덕후의 전개 단계이다.

 유튜브로 영어 공부하려다 호기심에 우연히 보게 된 BTS 유튜브 동영상을 시작으로 이제는 유튜브 곳곳을 누비며 이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기에 바쁜 나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오전 계획을 날려 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의 생활에서 중요한 시간인 독서와 글쓰기가 사라지다시피 줄어들고 만 것이다.

그렇게 나의 생활 패턴이 달라져버리고 이제는 휴대폰을 켜면 자동으로 보던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검색 엔진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거실에 가족과 함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던 것에서 이제 슬금슬금 혼자 방으로 들어가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위기 단계에 진입했다.

이러한 변화를 나의 삶에 활력과 변화로 받아들일 것인지, 유튜브를 끊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족들은 방에 혼자 들어가 무언가를 보고 있는 나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혹시 그들이 나의 덕질을 알게 된다면 무어라 할까?

작년 이맘때 나에게 세 살 어린 후배가 자신이 BTS 팬임을 고백했을 때 나는 묘한 웃음으로 '너 아직 청춘이구나'라고 말했었다. 그녀를 어제 다시 만났고, 나는 부끄러운 듯 슬며시 나도 그들의 팬이 될 거 같다는 말을 내비쳤다. 나이 든 팬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느꼈기에 그녀의 공감과 응원이 필요했다.


 " 음. 나도 요즘 말이야, BTS에 빠져있는데, 아직 그 애들 얼굴과 이름이 정확히 연결이 안 된단 말이야."

 다음과 같은 나의  방금까지 눈빛을 반짝이며 방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 언니! 언니는 아직 멀었어요. 어떻게 우리 탄이들 얼굴을 모를 수 있어요? 좀 더 공부하세요! "

  응원은 커녕 비난과 같은 말을 들은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 내가 원래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봐서 그래."


 진정한 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해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덕후의 세계로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숨어서 즐기며 나만의 비밀로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청춘의 특권인 덕질을 그만두고, 나의 지천명에 맞는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인가? 나는 결정해야 한다.


  문득 주방을 쳐다보니 설거지가 한가득이다.

'일단 BTS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끝내자.'

나는 고민 가득한 무거운 머리를 한번 세게 흔들고 휴대폰으로 BTS 음악을 틀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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