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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01. 2018

노동을 통해 깨달은 삶의 고통 3가지

 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이었다. 대학 동기가 공장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겠냐고 해서, 나는 덜컥 그러자고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동기는 자신이 속한 문학동아리에서 노동현장 경험을 갖기 위해 동아리 전체가 함께 그 아르바이트를 신청한 것이었다. 물론 나의 목적은 장학금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는 다른 현실적인 이유로 부산에는 드물게 하얀 눈이 유난히 자주 내렸던 1990년 12월~ 1991년 1월, 두 달간의 공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두 달간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노동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은 것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1. 추위 속 새벽 출근

  통근버스가 오는 미남로터리까지 가려면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가장 춥고 가장 잠이 오는 그 시간에 이불을 떨친 후, 찬 바람을 뚫고 나와 새벽 버스정류장의 칼바람에 맞서 언제 올지 모를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통근버스 오는 시간에 겨우 맞추어 도착해서, 통근버스에 오르면 이미 가득 찬 사람들로 숨 막힐 듯 좁은 공간에 몸을 기대고 비몽사몽으로 긴 시간을 달려 공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면 아직 하루가 채 시작하지도 않은 이른 아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은 벌써 지쳐버린다.


2.  시간과의 싸움

 그곳의 세상은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느낌이었다.  출근 카드를 찍고 아침 일찍 시작된 작업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 전등 불빛 아래서 고막을 울리는 기계 소리만을 들으며 기계들과 한 몸이 되어 움직여야만 했다.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실 수 없었고 옆 사람과 짧은 대화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라인을 벗어나거나 속도를 늦추면 우리 쪽 생산 라인이 중단되거나 밀리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에 있는 휴식시간까지의 시간은 너무나 더뎌서 10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는 중학교를 중퇴한 10대 소녀,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는 듯한 40대의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들의 손은 아주 능숙해서 쏟아지는 물건들이 밀릴 틈이 없었지만, 내 손은 더디기만 해서 내 앞에 물건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의 한 구절처럼 [탈출할 수만 있다면] 이란 읊조림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 와중에도 궁금했다.

 '나는 두 달이라는 한정된 기간이지만, 끝없이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그들은 정말 힘들지 않을까?'

'익숙해져서 괜찮은 걸까?'

  휴식 시간에 그 소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기회가 있으면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하라고 하면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투로 말하자 옆에서 듣던 아주머니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다. 두 달 하고 갈 대학생이 힘들다고 투덜대는 모습이 호강에 겨워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가 퇴근한 후에도 자주 야근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3. 무미건조한 관계

 세 번째로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 간의 무미건조한 관계였다. 점심시간에 되면 구내식당으로 가서 줄을 선다. 그리고 짧은 식사 시간 동안 사람들은 지쳐서인지 서로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빠르게 밥만 먹었다. 내가 말을 걸면 무뚝뚝하고 짧게 대꾸했다. 아무런 인간적 유대나 감정적 소통을 나눌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르바이트생이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들끼리도 동료로서 일상의 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저 웃고 떠드는 것은 같이 온 우리 아르바이트생들뿐이었다. (위의 내용은 오래전 기억의 파편들을 연결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다.)


 이제는 많은 부분을 자동화된 기계가 대체하고 있어서 조금 다를 테지만, 오랜 시간 이루어지는 단순 노동이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뇌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기계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시간의 흐름에 나 자신을 맡겨버린다. 더디 가는 이 시간에서 얼른 탈출하길 바라면서.

 정신노동의 어려움과 책임감도 이에 못지않을 만큼 힘들 수 있지만, 나 자신이 하나의 기계로 취급되는 느낌과 동료와 교류할 시간적, 업무적  여건이 안 되는 분위기,  단순한 동작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인한 지루함은 나에게 실로 고통이었다.

  그 해 겨울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그토록 단순노동이 견디기 힘들고 사람의 존재 가치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내 삶에 대해 겸손하고 감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을 하는 사람들(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노동을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 육체노동을 의미한다.)의 삶의 무게에 대해 무감각했을 것이고 그들과 마음으로나마 연대의식을 갖게 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해 추웠던 겨울은 그 어떤 뜨거운 강연보다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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