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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14. 2018

나를 각성시킨 책, [태백산맥]

내가 졸업논문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미스터 션샤인'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처음에는 그다지 재미를 못 느꼈는데, 의병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요즘, 재미를 느껴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련 도 눈에 띄면  읽게 되는데, 오늘 '세 남자를 각성시킨 고애신'이라는 표제가 흥미로운 글이 있어 읽어 보았다.  각자 불우한 사연으로 시대적 현실을 회피하던 세 남자가 시대의 불꽃으로 살아가는 의병 고애신으로 인해 각성하게 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를 각성시킨 존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태백산맥]이라는 책이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지금처럼 정보가 시시각각 전해지지도 , 소위 '땡전뉴스'로 불리던 언론통제 속 뉴스, 카더라 통신이라 불리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야기들이  진실보다 더 묵직한 힘으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사회 혼란 세력'이고,  정치인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북한을 돕는 짓'이며, 전라도 사람들은 '믿으면 안 된다'는 근거없는 논리를 나는 친구들과 침 튀기며 수다 떠는데 활용하였다. 그 후 지방의 작은 대학을 다니던, 그것도 학교와 집만을 오가며 폐쇄적인 삶을 살던 내가 껍질을 깨고 각성할 일은  그 후로도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잡식성 책읽기로 삶의 허허로움버티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 집어 든 것이 [태백산맥 1권]이었고, 그 후로 충격적이고 중독성 강한 스토리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10권의 책을 순식간에 몰아 읽어버렸다. 


 내가 스무살까지 배웠고 들었던 근대사, 현대사의 진실과 정의가 완전히 뒤집어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두근거리고 놀라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누구와도 뜨겁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견딜 수 없게 답답했다. 이 책은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지만, 내 주변에 이 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분위기가 어떨지 두려운 소심한 아이였다. 그렇게 뜨겁던 내 심장을 어쩌지 못해 나는 어디에라도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4년 내내 이 책의 대사, 장면, 인물들에 빠져 살았던 나는, 못마땅해 하는 교수님의 표정도 모른 척하고 [소설 태백산맥 속의 인물 분석]을 주제로 꾸역꾸역 졸업논문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념과 사상에 대한 생각보다  시대적인 각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왜 어른들은 모르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나도 모르게 그들의 권력을 위해 진실을 희생시키는데 내가 일조하는 중이 아닐까? 내가 태백산맥 속 염상진, 김범우 같은 용기가 없더라도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거짓 역사에 속지는 말자고. 그래서 지금도 시대를 바라보는 나의 인식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깨어서 시대 속을 한번더 들여다 보려는 증세가 생겼다.

 의병들이 살았던 1900년대와, 태백산맥의 인물들이 살던 1950년대, 내가 이 책을 읽던 1990년대와 그리고 지금 2018년의 시대 정신은 각각 다르지만 언제나 권력의 검은 파도 속에 표류하지 말고 고고히 빛나는 시대 정신의 등대를  바라보며 진실과 정의의 땅으로 나아가자고.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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