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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30. 2019

재치꾹 사이소

 " 옛날에 아침마다 재첩국 팔러 다니던 아지매 생각나나?"

 재첩국을 먹던 남편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말했다.

"생각나지. 근데 그 아지매들 어디서 왔는지 아나?"

 "몰라"

 "엄궁동 아지매들이다."

 "엄궁동? 새벽에 그 멀리서 왔다고?"

 "응. 엄궁동 앞에 낙동강 하구 있잖아. 거기서 재첩을 잡아서 끓여갖고 산 넘고 고개 넘어 부산 곳곳을 돌아다닌다 아이가."

나는 작년에 우리 고장 역사 탐방 때 들었던 내용을 슬슬 풀어놓으며 남편이 밥을 먹고 있는 식탁 앞에 앉았다.

 "와. 진짜 힘들었겠다."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는데. 새벽에  멀리서 '재치꾹 사이소~'  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부리나케 냄비 하나 들고나가서 재첩국 한 바가지 사 와서 끓여주면 진짜 맛있었는데."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 시절을 아련히 떠올렸다.


 그 시절 아주머니들은 그 무거운 양철동이를 머리에 이고 부산 곳곳, 골목 곳곳을 어떻게 누비고 다닌 걸까?  언젠가 타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인에게 재첩국 아지매 이야기를 하니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익숙한 그것을 그녀는 전혀 모른다고 하니, 어릴 적 일상적으로 울려 퍼지던 그 소리가 부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나는 잠결에 들리는 그 소리와 엄마가 달려 나가는 소리를 함께 들으며 오늘 아침에는 뽀얀 재첩국 한 그릇 먹겠구나 생각하며 눈을 비비며 일어났던 날들이 가득하다. 그 아주머니들은 도대체 새벽 몇 시에 일어나기에 그 시간에 내가 살던 동네까지 올 수 있었던 걸까? 신새벽에 양철동이를 머리에 올리고 높다란 만덕 고개를 힘겹게 걸어서 넘어온 것일까? 아니면,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 입구에 내린 후 골목마다 다니며 '재치꾹 사이소!'를 외쳤던 것일까?


 고생스럽던 옛날이 자꾸만 그리워지면 늙은 거라는데, 새벽의 재첩국 아지매만큼 겨울밤 '찹쌀떡 아저씨'도 그립다. 겨울밤이면 아련하게 들리는 '찹싸알~떠억~ 메밀묵!'을 청승맞을 정도로 구슬프게 외치던 그 목소리.  지금처럼 야식 배달이나 편의점이 없던 시절, 긴 겨울밤 출출함을 달래는 시간에 울려 퍼지던 그 소리는 어린 나에게 참기 어려운 허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럴 때면 엄마의 눈치를 보며 고민하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사라질 때쯤 허겁지겁 엄마에게 사달라고 졸라서 후다닥 쫓아나가면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러면 한참을 아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었다. 그러다 가끔 사 먹게 된 그 쫀득한 찹쌀떡 속의 달콤한 팥앙금과 손과 입에 가득 묻어나는 하얀 분말의 맛은 지금도 찌릿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은 전화 한 통, 또는 휴대폰 터치 몇 번으로 온갖 음식을 언제든 집안에 앉아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그 시절 멀리서 들리는 음식 파는 소리에 떨리는 가슴으로 뛰쳐나가는 일은 더이상 없다. 풍요로움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지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풍요로움은 가벼운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가벼운 만큼 쉽게 날아가버리고, 더욱 행복에 목말라한다. 마치 바닷물을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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