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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May 12. 2019

호칭에 대하여

[오빠]라는 호칭에 대한 의미 확대 요청의 변

   새 학년의 시작을 앞둔  2월경 1년간 함께  동학선생님들과 처음 가진 회식자리의 일이다. 서로 나이를 말하며 호칭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대뜸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를 막 대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뜬금없는 나의 고백에 사람들은 당황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해 놓고도  말의 앙스가 웃겨서 같이 웃어버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나는 가만히 있거나 무표정하게 말하면 참 딱딱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인상이다.  가끔 엉뚱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평소에는 내가 무뚝뚝한 편이기 때문에 나오는 반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약간 벽이 있어 보이는 그런 다.  나는 이러한 나의 성격에 대해 한 때 고민하며 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하였지만, 결국 다음과 같이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성향을 굳이 고치려 하지 말자. 내가 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식적으로 행동해야 하나.'


    공립학교는 다른 직장과 달리 3~4년마다 학교를  옮겨 다니는 시스템이고 같은 학교서도 동학년이 아니면 서로 가벼운 인사 정도를 나누는 얇은 관계로 지내는 것이 다반사다.  특히 나처럼 사교성에 담쌓고 사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른 직장에 비해 동료들과의 관계가 파편화되기 쉽다. (이 부분이 교육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몇 년 전 소위 센 언니들이 모인 학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  센 언니들 사이에서 소심하고 무뚝뚝한 내가 주눅 들어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중 한 선생님 대뜸 나의 이름을 큰소리로(기본적으로 이 언니는 목소리가 컸다) '00야'하고 냅다 부르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호칭 뒤에 짧고 강렬한 반이 뒤따다.  학교에서 아주 친하지 않고는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그 후로 가벼운 욕까지 섞어가며 나를 막 대하는데 그런 그녀의 말투, 특히 호칭이 내 마음 확 꽂혔다.  그렇게 그 무서운 언니들에게 1년 동안 욕을 들어가며 낄낄거리 가까워졌고,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처럼 융통성이 없고 경직된 사람에게는 그처럼 막 대해주는 것이 오히려 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식당이나 가게에 갔을 때 직원을 부르는 호칭이 참 어렵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모', '언니'하며 정답게 부르면 좋지만 그게 나는 잘 안된다. 그냥 '저기요'나 '사장님'하는 호칭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 이유를 나는 나의 어릴 적 좁은 인간관계에서 찾아본다.  나의 형제 관계는 남동생 한 명이 끝이다.  나는 언니나 오빠가 없다.  그리고 사촌 형제도 많지 않고 교류도 별로 없어서 오빠나 언니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누군가를 오빠나 언니로 부른 경험이 없 나는 이 호칭을 내뱉는 것이 항상 어색다. 대학 이후에 나이 차이가  사회적 관계가 나름 형성되었지만 나는 나보다 학번이 높은 이들에게는 선배라 불렀고 후배들에게도 'ㅇㅇ씨'라 호칭하며 깍듯한 말투로 대해서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다. 사회 나와서는 동료들을 직위 불렀다.  간혹 누군가가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쓰면 뭔가 어색해 머리 끝이 쭈뼛거리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를 언니로 불러주는 그녀의 친화력이 부러웠다. 지금 내 주변에 제법 친한 동생 같은 동료있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들을 선생님(정확히 말하면, '쌤')으로 호칭한다.  


  지금 우리 학교에 한 남자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선배 여선생님들을 거리낌 없이 누님이라 부른다.  당연히 중년의 여선생님들은 그 남선생님을 아주 좋아한다.  나는 처음에 그의 호칭이 어색하고 뜬금없었다. 그는 심지어 나에게 자기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고 반말을 써달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했다.  나는 부담스럽다며 거부했다. 4년 정도 알게 된 지금 나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편하게 그를 대하지만 호칭은 여전히 ㅇㅇ선생님이다.   누군가가 나를 '00야'라고 부르거나 '언니', '누나'와 같은 호칭을 사용하면 나는 그와의 관계가 확 당겨짐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도 선배들에게는 언니라는 호칭을 쓰고 싶고, 후배들에게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말을 쓰는 순간 더 어색해지고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는 연애할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남편을  '00 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 이름을 붙여서 '00 아빠'라 부르기 시작했고, 나의 엄마를 '00 할머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렇게 부르게 된 것 편해져 언젠가부터 아이 이름을 빼고 아예 '아빠', '할머니'라 부르는 쪽으로 호칭이 변질되어갔다.  어느 날 엄마는 '왜 내가 네 할머니냐'며 발끈다. 나는 엄마가 그 말에 언젠가부터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남편과 엄마를 아빠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현재 남편을 집에서는 '자기야', 밖에서는 '누구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장난을 걸고 싶거나 남편이 귀여운 행동을 하면 '오빠'라 외친다.  나는 '오빠'라는 호칭도 '언니'와 마찬가지로 평생에 걸쳐 누군가에게 써본 일이 없다.  사실 '언니'보다 '오빠'는 나에게 더욱 생소한 호칭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세월이 지나자 조금씩 얼굴이 두꺼워지면서 이 호칭을 가끔 남편에게 쓰다가 이제는 대놓고 쓰게 되었다.  참고로 남편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래도 나는 갈수록 남편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자주 쓰게 되었다. 최근에는 아들에게도 장난 삼아 '오빠'라는 호칭을 쓴다. 우스개 소리로 '잘생기면 다 오빠'라는 말이 있듯이 내 눈에 이쁘고 사랑스러우면 다 오빠인 것이다. 아들은 내가 상황에 따라 부르는 다양한 호칭이 있어서 사실 이름보다 이런저런 다른 호칭으로 불릴 때가 많기 때문에 오빠라 불러도 당연한 듯 무표정으로 대꾸한다.  그런데 요즘 또 다른 오빠들이 무려 7명이나 더 생겼다. 바로 BTS가 그들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해주는 남편과 아들 앞에서 나는 뻔뻔하게 그 소년 같은 청년들을 대 놓고 '우리 오빠들 어쩌고 저쩌고' 한다.  남편과 아들은 나의 이러한 호칭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내 지인들은 그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거나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나는 내 애정을 담을 다른 호칭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물론 남편은 가끔 나의 러한 오빠 호칭 남용에 반격을 가하듯 다음과 같이 과격 호칭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 아들.  요즘 너희 엄마가 그 **들 때문에 반찬에 너무 신경 안 쓴다고 생각 안 하냐?"

남편의 갑작스러운 거친 말에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뭔가 찔린 듯 기죽은 표정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 오빠. 왜 그래?  우리 오빠들을 **들이라고 부르는 건 이번 한 번만 용서한다.  다음엔 혼난다.  앞으로 반찬 신경 쓸게. 그래도 내겐 우리 두 오빠가 1번, 2번인 거 알지?"

 나의 닭살 애교에 남편은 비웃으며 말했다.

 "거짓말하고 있네."

 " 헉, 아닌데.  나의 영원한 오빠는 너희 둘이야. 엄마 마음 알지. 우리 2번 오빠?"

 " 난 상관없는데? 엄마가 좋으면 됐지. "

아들은 우리 부부의 유치한 신경전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지 대충 밥을 먹고 급하게 일어섰다.

.

  오빠라는 호칭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묘한 끌림을 준다. 이 호칭을 소리 내었을 때 느껴지는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의 비음이 내 청각을 간지럽힌다. 그래서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에게만 붙이고 싶은 호칭이다. 그래서 남편이 귀여운 행동을 할 때, 아들이 멋져 보일 때 나는 이들을 과감하게 오빠라고 부르며 나의 애정을 표현한다.  남편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아들은 귀찮은 표정으로 대꾸해준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아들 앞에서만은 거리낌 없이 BTS를 지칭할 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대체할 다른 호칭을 내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쌤'이라 부르는 게 예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 아이를 보면 직접적으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꿔먹기 시작했다. 그 후로 아이들이 나를 '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정답게 느껴졌다.

  이처럼 호칭의 변화는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허물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말이다. 그래서 감히 '오빠'라는 호칭의 사전적 의미와 해석의 확대를 이 자리에서 요청한다.

   나의 이러한 요청에 무리수와 논쟁이 따르겠지만,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므로 언젠가 아래와 같이 어학사전에 '오빠'의 정의가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BTS의 소년 아니, 청년들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과감히 오빠라 호칭하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 보며.


2022년판 어학사전
[오빠]
1. 여동생이 나이 많은 남자 형제를 칭할 때 쓰는 말
2.  여성이 호감 가는 남성을 부르는 호칭의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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