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21. 2019

고3 엄마가 느끼는 대입제도 유감

  아이는 3년 동안 나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였다. (물론 아주 열심히 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아이의 학교는 지방 도시인 부산, 그중에서도 교육높은 해운대나 동래 쪽이 아닌 외곽에 위치한, 개교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남녀공학고등학교이다.  공립, 남녀공학, 외곽. 이 세 단어에서 상되는 대로 주로 젊은 교사들이 밀려서 전근 오거나 신규 교사 발령받아 와서 3,4년 머물다 가는, 입시에 대한 압박이 덜한 자유적인 면학분위기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사들과 대체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큰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데 반해, 학부모들은 조금 멀어도 소위 입시 명문 사학으로 불리는 D에 자녀를 보내기를 바란다.  라서 나름 교육열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 또한 D 고를 보내고 싶었으나 아이가 원치 않고 집에서 가까운 이유로 이런저런 불안감을 꿀꺽 삼키며 이 학교를 보냈다.

 

  아이는 부모의 근거 없는(?) 소신에 힘입어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고등학교에 올라왔다.  중학교 때까지 수학에 자신 있던 아이 고1 내내 수학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거리자 아이와 불안한 마음에 나름 동네에서 혹독하기로 유명한 수학학원을 찾아갔다.  학원장은 수학 선행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아이 말에 황당해하며 책망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에게 주말에 8시간씩 학원에 나와 자습하도록 명하였다.  아이는 생 처음 틀린 수학 문제 수만큼 손바닥을 맞아가며 6개월간 엄청난 학원 과제와 학원 수업량으로 지쳐가며 휴일과 잠을 반납하고 수학 공부에 매달렸다. (이 어이없는 시간을 아이와 나는 지금 뼈 아프게 후회한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도 수학 성적은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수학에 매달리는 동안 손 놓을 수밖에 없었던 다른 교과 도 흔들리면서 1학년 내신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다.  1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2학년에 접어들면서 다행히 아이는 어느 정도 수학 공부 방법을 터득한 듯 수학 성적이 안정을 찾았덕분에 교과 성적도 함께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현 대학 입시제도에 딱히 불만이 없었다.  같은 교사로서 내신성적의 비중이 대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과정 정상화와 교사들의 수업 자율권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고 3이 되고 실질적으로 대입 문제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현 입제도가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깨달았다.  일단 고 3이 되자 아이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3학년 1학기 내신 성적이 대입에 40%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아이는 3학년 1학기 중간,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한다는  안팎의 압력에 힘들어했다.  원하는 대학을 가려면 모든 과목에서 꼭 1등급을 받아야 한다 생각했고(1학년 때의 좋지 않은 내신 성적을 만회해야 한다고 우리 부부도 무의식 중에 압력을 넣었음을 시인한다.) 그러려면 과목에 따라 상위 2명 안에 들거나 국영수 같은 과목은 적어도 5명 안에 들어야 했다.  아이는 담임선생님도 인정할 만큼 시험 중 실수가 잦아서, 과목당 실수를 최소 1~2개 한다.  그에 비해 문과반 특성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여학생 2~3명은 과목당 1~2문제 틀릴까 말까이다.  1~2문제의 실수는 항상 아이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아이는 실수를 많이 하는 교과인 국어에서 2~3문제는 기본으로 틀릴 것이고 결국 1~2명 차이로 1등급을 놓칠 거라는 생각으로 시험기간 내내 불안해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2학년 내내 안정적으로 1등급을 놓치지 않던 수학마저 배점이 높은 주관식 2문제에서 실수를 범해서 6등이 되 아깝게 2등급을 받게 되어 아이는 국어, 수학,  세 과목에서 2등급을 받았다.  결국 목표했던 내신 등급을 맞추지 못한 아이는 고민 끝에 원했던 대학에 교과 전형으로 지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원서를 쓰기로 했다.  이렇게 엄마의 입장에서 3학년 1학기를 힘들게 보낸 아이를 지켜본 나는 지금의 입시제도에 대해 불만이 생겨버렸다.   바로  친구가 한, 두 문제 더 맞히고 덜 맞추는 것에 따라 등급이 바뀌고 대입 전형에 영향을 주상황에 불안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신성적 중심의 대입 줄 세우기가 아이들을 얼마나 피 말리고 좌절시키는지 알게 된 것이다.  렇게  100의 학생들 벌이는 열한 경쟁 속에서 중하위 등급 학생들 더욱 오를 수 없는 벽 같은 등급의 벽을 보며  얼마나 막막한 마음일까 싶기도 했다.  내가 대학을 가던 학력고사 시절에도 입시의 압박감은 컸지만 학교 시험을 볼 때마다 이렇게 긴장하고, 주변 아이들의 등수에  민감하지는 않았다.  일부 호기로운 아이들은 3학년 되어서 열심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내신 등급이 마무리되자 아이는 자소서로 인해 괴로워했다. 조금이라도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그동안 아빠로부터 융통성이 없다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그래서 자신의 활동을 통해 성장한 점을 조금 포장해서 적어보라는 조언에도 괴로워했다. 아이의 이런 강박증에 나도 슬며시 짜증이 났다.  그저 이 활동을 통해서 나의 이러저러한 능력이 발전했다고 쓰면 될 것을,  아이는 정말 자신이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 의문스럽다는 소리로 나의 부아를 돋다.  담임교사도 아이의 다소 밋밋한 자소서를 보고는 여러 모로 타박을 하고 좀 더 보충해서 다시 써오라고 했다.  아이는 공부보다 자소서 쓰는 게 더 힘들다고 투덜댔다.  한 편으로는 아이를 너무 온실 속에서 키운 내 잘못이 탓해지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 입시 제도가 아이에게 벌써부터 요령이나 포장하기를 먼저 가르치는가 싶기도 며 나 스스로도 뭐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제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떤 활동에 참여하라거나 무슨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면 질색을 하던 내성적인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스스로 다양한 활동과 대회에 참여하는 용기를 보이면서 마음 한편 감동과 흐함이 컸다.  아이에게 숨겨진 재능이나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실수나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키울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져 아이를 많이 성장시켰다.


 " 야,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네가 토론대회에 나가고, 학예제에서 춤을 추다니."

아이의 자서를 보며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아이도 자신의 3년을 돌아보며 힘든 순간들이었지만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평범한 일반고를 다니는 아이조차도 내신 등급 받는 일이 이렇게 피 말리는 일이라면 현재의 대입제도가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나의 믿음이 어쩌면 허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불안감에 사교육에 더 매달리게 된다는 것.   


  그래서 고3 엄마의 비전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으로 제안해 본다. 내신 성적을 지금처럼 열한 등급 전쟁을 유발하는 상대평가에서 실질적인 절대평가로 바꾸어야 한다고.  학교마다 지역마다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 상태에서 지금처럼 학교별 상대평가를 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실력에 대한 변별력과  객관성을 떨어뜨, 학 입학사정관들도 학교의 내신 등급을 불신하고 복잡한 이중의 입시 전형을 두는 것이라고.


  물론 학교 내신 등급을 절대평가로 매기게 되면 학교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높은 등급을 주게끔 문제를 쉽게 출제할 가능성이 있그래서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지만 교육전문가와 현장 교사들이 시간을 가지고 머리를 모아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과 같 학생들에게 각자도생 하라고 살벌한 내신 경쟁의 전쟁터로 내모는 것보다 덜 무모하다고 본다.  학교별 절대평가의 객관성과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어떤 장치를 고안하 일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한 학교 문과반 100여 명의 학생이 한 등급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살인적인 사교육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학교 또한 사교육과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을 지켜내는 교육활동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요청에 맞는 창의성과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 그리고 입시 경쟁에서 중요한 객관성과 변별력,  두 마리 토끼는 함께 할 수 없는 딜레마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수레의 튼튼한 양쪽 바퀴가 될 수 있다 고 3 아들을 둔 한 평범한 엄마는 중얼거려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없는 며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