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글밭

by 연구하는 실천가

방학이 되면 글이 실컷 써질 줄 알았다. 못해도 사흘에 한 편은 발행할 줄 알았다. 왠 걸! 시간이 많다고 글이 써지는 게 아니었다. 눅직하고 풍부한 거름이 가득한 토양이라야 작물이든 잡초든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고운 꽃과 실한 열매가 나는 법이다. 메마른 모래알 같은 내 글밭은 말라도 한참 말랐나 보다. 글을 써 보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글밭을 헤집을수록 빈약한 글들이 푸석푸석한 얼굴을 내민다. 포실포실한 열매를 기대했던 나는 초조한 마음에 자판을 이리저리 두드려 보지만 익은 글들만이 모니터 밭에 수북히 쌓인다.


이제야 깨달았다. 글쓰기 영혼을 풍성하게 해 준다고 믿었으나, 때로 영혼을 갉아먹는 좀벌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빚어낸 글이 아닌 손과 머리로 만들어 낸 글은 나의 영혼 여기저기를 생채기 낸다. 그렇게 쓰인 글 조각들은 나의 가슴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내며 웅얼거린다. 하게 욕심내어 마른 땅에 씨만 잔뜩 뿌린 농부는 밭을 갈고 돌을 줍고 거름을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깨닫는다.


시간이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시간을 채우는 나의 영혼이 뜨거워져야 글이 됨을. 예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겠다는 급한 의도가 글을 설익게 하고, 그런 글은 뜸 들지 않은 밥알처럼 낱낱이 부서진다. 그래서 다시금 고쳐 앉아 본다. 처음 글을 브런치에 올릴 때의 두근거림을 떠올리며. 그냥 글이 쓰고 싶어서, 내 마음속 불덩이를 누군가에게 따뜻한 화로처럼 나누고 싶어서 그랬던 그때처럼.


하지만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이 설익은 채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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