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물에 찾아온 세 가지 작은 변화

by 연구하는 실천가

올해 들어 내 삶의 축이 약간 바뀌었다. 그 전에도 조금씩 삶의 축은 바뀌어 왔으나 올해만큼 바뀐 적은 로 없었다.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바뀌었는데, 첫 번째는 일주일에 한두 번 산책로 걷기로 운동했다 위안하며 최소한 생활 근력과 부담스러운 살으로 절묘한 조화를 유지해 왔 내가 (그러니까 뚱뚱함을 통통함으로 위장한 상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하루 1시간 이상의 걷기와 주 3회의 탁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도는 세지 않지만 운동 시간으로는 주당 10시간을 넘며 살이 빠졌다는 말을 소수의 사람(현재 2명)에게 듣고 있다.(무척 기쁘다) 특히 걷기는 점점 시간을 늘리고 있어 이러다 운동 중독(정확히 말하면 걷기 중독)이 되는 건 아닌지 데없는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두 번째 변화는 여유시간에 주로 글쓰기, 책 읽기, tv 드라마 보기, 인터넷 뉴스 보기로 돌려막기 하던 내가 지금은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위버스, V앱 등 다양한 sns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카카오톡과 밴드 외에는 sns를 모르던 내가 이제 휴대폰 바탕화면이 터져나갈 듯 각종 앱을 깔면서 휴대폰 용량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렇게 평일 저녁과 휴일 하루를 휴대폰으로 sns를 하 텔레비전으로 유튜브 보며 시간을 때운다.


마지막 하나는 20대 이후로 음악을 찾아들어 본 적 없던 음악 무식자인 내가 24시간 음악 듣기( 잘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잔다)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평생 들었던 음악보다 요 몇 개월간 들은 음악이 더 양적으로 많은 듯하다. 휴대폰을 살 때 딸려 오는 이어폰을 서랍장에 처박아두고 사용해 본 적 없던 내가 5개월간 이어폰을 차례 고장 내며 여러 번 새로 구매하였다. 덕분에 청력이 많이 나빠지고 있음도 느낀다.


러한 세 가지 변화로 나의 삶의 축이 틀어지자 내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때 이성적 인간임을 자부하며 유튜브에 머리를 박고 살던 남편에게 '책 읽지 않는 인간이 인간이냐'며 호기롭게 일갈하던 내가 이제 이성은 저 멀리 던져버렸고 감성적 인간을 넘어 몸만 튼튼한 폐인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밤 10시 대의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요일별로 꿰고 8시만 되면 뉴스를 열혈 시청하며 운전 중에는 각종 시사프로를 섭렵하였다. 그 결과물로 드라마계의 추이와 시대적 사회적 부조리를 나름 냉철한 언어로 어설프나마 분석 비판하던 나의 글과 대화 주제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로지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떡밥이 없나 어슬렁 거리는 sns계의 하이에나가 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감수성과 사유량은 급격히 줄어 글이 써지지 않아 나의 런치 발행 편수는 반토막이 났다.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채워야 할 연간 연수 시간인 90시간도 위협받고 있다. 작년까지 150시간 내외를 거뜬히 채우며 나름 우수 연수교사였던 내가 최소 이수 시간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올해 하반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지금 듣고 있는 원격연수도 시작만 하고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해 이수를 기대하기 힘들 지경이다.


또 걷기 중독으로 인해 저녁만 먹으면 피곤이 몰려와 예전엔 12시가 넘어야 잠을 자던 내가 이제는 10시가 되기도 전에 꼬박꼬박 졸기 시작하고 12시 전에 곯아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잠자기 전 30분 독서 습관이 완전히 무너졌다. 침대에 누워 책을 펴면 sns 발신음이 울리고 그렇게 온라인 세상에 잠시 다녀오면 1시간은 후딱 지나가고 국 책과는 일별에 그치고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자고 만다.


그렇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건 다 방탄소년단 때문이다. 걷기의 양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그들의 음악을 듣고 걷다 보면 시간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든 sns의 시작도 그들의 떡밥을 보기 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나는 운동 중독도 sns 중독도, 음악 중독도 아닌 바로 bts 중독이었던 것이다. 이제 하루빨리 해독제를 찾아 떠날 때이다.


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 삶의 축은 우물 안 개구리의 삶과 비슷하였다. 조그맣게 보이는 우물 위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책 속의 에서 진리를 갈구하고, tv 드라마 속 환상을 내 삶의 기쁨으로 여겼다. 뉴스 속 세상이 전부이고 그걸 내려다보는 내가 전지전능한 듯 세상을 비판하였다. 사실 나의 세상은 좁고도 좁은 거실 소파였다. 그런 나의 우물에서 뜻밖의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그것을 파 들어가다 보면 다시 또 다른 좁은 우물 속 개구리가 될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내가 될지는 모르겠만 삶의 작은 변화를 이렇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변화를 모르던 경직된 모범생이 작은 일탈이 자극이 되어 좀 더 큰 우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독에 시달리는 내가 걱정되어 해독제를 찾거나 추천해 주실 분들은 잠깐만 기다려 주시라. 그렇게 고상한 척 나의 우물을 사랑했던 한 개구리가 제 새로운 우물 또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짧은 앞다리를 살짝 뻗어보며 뒷다리를 움츠리는 중이니 일단 도약의 점프를 해보고 해독제 요청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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