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독서

책 <역사의 역사>를 읽으며

by 연구하는 실천가

나는 평탄한 길은 언제까지고 잘 걷는데 경사가 있는 길, 그러니까 산은 잘 오르지 못한다. 평소 내 숨차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저질 체력이라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오르막길을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턱 차오르고 눈 앞이 캄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산 오르는 걸 좋아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많은 나는 좀 슬프다. 예를 들면 운동을 못하는데 운동을 좋아한다던가, 하고픈 말은 많은데 나서기를 싫어한다던가, 리듬을 못 타지만 춤을 배우고 싶다거나 게으른데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등등.) 어쨌든 이유는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독서도 그와 유사하다. 나의 지적 수준에 비해 다소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나는 등산 초반 오르막을 오를 때처럼 갑갑하다. 산 중턱쯤에서 사진 한 판 찍고 돌아설까 고민하듯이, 책도 '음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하고 탁 덮고싶어진다. 지만 자연의 풍경도, 맑은 공기도, 나만의 사색도 다 포기하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무념무상 산을 오르듯, 책도 읽다 보면 뭔가 보이리라 기대하며 설렁설렁 넘긴다. 그러다 디어 산 꼭대기가 보이면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내려다 보이는 멋진 풍광에 눈이 커지고 살랑이는 바람에 정신이 맑아지듯, 책도 어느 순간 확 꽂혀서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읽힌다. (안 그런 책도 있다. 그런 경우 확 덮고 포기한다.) 이때의 지적 희열감은 말 그대로 짜릿하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도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처음에 <역사의 역사>를 읽을 때는 발음하기 어려운 고대 역사가들의 이름 만큼이나 생소한 그 시대 이야기를 풀어놓는 통에 더운 날씨도 한 몫하며 나를 잠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특히 요즘 평지의 산책로 같은 편한 소설과 에세이 류들만 편식하던 터라 더욱 내 수준에서 <역사의 역사>는 초반 오르막이 제법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읽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설렁설렁 읽었다.


그러다 이 책의 작가 유시민이 [랑케의 역사서]를 소개하며 이 역사서가 난해한 이유를 우리가 유럽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랑케의 역사서 속 시대와 인물을 우리나라 역사 속 시대와 인물로 절묘하게 바꾸어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유시민의 비유와 설명법에 감탄하며 드디어 이 책의 재미 포인트를 찾았다. 그러면서 글 곳곳에 나타난 그의 지적 능력과 글을 풀어내는 솜씨를 엉감생심 질투하였다. < 아는 것만큼 보이고 읽힌다>는 유시민의 말 그대로 초반 역사가들 이야기인 <제1장,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정말 잘 읽히지 않았다면,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귀동냥 수준이나마 알고 있던 사마천의 <사기>, 마르크스의 <유물론>, 내가 좋아하는 역사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나오면서 흥미가 확 올라갔다. 특히 내가 몇 년 전 흥분하면서 읽었던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할라리의 <사피엔스>와 비교하면서 풀어가는 유시민의 마지막 역사서 이야기는 나의 지적 희열을 극으로 끌어올리며 반드시 할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겠다고 나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책을 읽고 희열이 넘치면 가만히 있는 가족을 괴롭힌다. 각자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쉬는 자정 즈음의 시간, 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달려들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너희들, 역사를 진보시킨 인류 최대의 3대 사건이 뭔지 아나?"

" 그건 바로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야. 그리고 너희 농업혁명이 인류 최대의 사기란 걸 알아?"

혼자서 질문과 대답을 하는 원맨쇼를 보는 두 남자는 '또 시작되었구나'하는 눈빛으로 유튜브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억지 리액션을 해 주었다.

" 그래? 왜? 뭔데?"

" 농업의 시작이 인류를 정착시켜 인구가 늘어 도시를 만들고 역사를 진보시켰다고 배웠잖아. 근데 그게 아니야. 역사의 진보가 결코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던 거지. 사실상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수렵생활 때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되었다고. 이해돼? 그건 마치 소, 돼지가 가축이 되면서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사실상 가장 불행한 동물이 된 것처럼 말이야. 그럼 이제 과학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후에 과연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거보다 더 진보한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걸까?"

더 이상 반응이 없는 가족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제 한 없는 오르막 같던 첫 장의 이야기도 빛나기 시작했다.


[내란이 계속되자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말의 뜻이 달라졌다. 만용은 충성심으로 통하고, 신중함은 비겁한 자의 핑계가 되었다. 절제는 남자답지 못함의 다른 표현이고,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 하나 실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충동적인 열의는 남자다움의 징표이고, 배후에서 꾸미는 음모는 정당방위였다. 과격파는 언제나 신뢰받고, 그들을 비판하면 의심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꾸민 음모는 영리하다는 증거였고....]

위의 글은 이 책의 첫 장에서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쓴 역사서 <필로폰네 소스 전쟁사>의 일부이다. 처음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간 이 구절이 두 번째 읽을 때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다. 역사가 과거의 조명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면, 그 옛날 한 역사가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현재를 예측한 것이고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고대와 현대를 잇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고대 그리스 내전의 사회상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양상과 이를 둘러싼 세력들의 모습, 또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오늘 오후 2시, 이 여름 가장 더운 시간에 몰운대를 오르고 있다. 몰운대 입구의 쏟아지는 햇살과 부담스러운 오르막을 10분만 참고 오르면, 고즈넉한 여름 숲길이 소담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여름 숲길 산책만큼, 여름 독서는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