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소설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소설이 읽히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감정에 투영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 삶이 내 마음에 와 닿기엔 내 감정들이 너무 탁해진 느낌이다. 오히려 그동안 읽지 않던 시에 마음이 간다. 시를 읽으면 시인의 감정이 숲의 공기처럼 탁한 내 감정을 정화해주는 기분이 든다. 요즘 들어 시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또 비슷한 이유로 상처 받은 날은 글을 읽기보다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 또각또각 반듯한 대로를 걸어가는 것이 글 읽기라면 아픈 날에는 흥청흥청 흔들리며 골목길 따라 주절거리듯 노래를 듣는다. 이럴 때 생각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감정이 가는 대로 노래의 음률을 따라 흘러가면 된다. 그러면 어느덧 노래는 내 마음에 반창고 하나 붙여놓는다.
그처럼 글을 쓸 때도 슬픈 날은 시를 쓰게 된다. 아픈 날에 내 마음이 이렇다 저렇다 하소연하듯 서술어를 주렁주렁 달기엔 글의 긴 호흡이 벅차기 때문이다. 그저 아픈 마음 한 조각을 어떤 대상에 투영해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된다.
결국 산문은 머리로 쓰지만 운문은 가슴으로 쓴다.
뭉쳐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릿속 회로를 작동시켜 봐야 더욱 얽힐 뿐이다. 그럴 땐 사고를 멈추고 얽혀버린 실타래를 오히려 꽁꽁 뭉치고 뭉쳐 가슴 깊숙한 곳에서 토하듯 뱉어내면 시원해진다.
그렇게 나는 시든 국화꽃을 바라보며, 날아가버린 철새를 바라보며 가슴의 흉터들을 작은 딱지만 남겨놓고 토하듯 시를 끄적인다.
그렇게 토하듯 쓴 시를 빙자한 나의 글들이 신라 향가인 [제망매가]처럼 고상한 문학작품이 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어쩌랴. 그리운 이를 향할 때는 항상 시 비슷한 것을 끄적이게 되는 것을.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위로가 되는 것을.
넌 내게 그런 아이였다.
희야
너는 내게 그런 아이였다.
재작년 1월 나의 새해 인사에
너는 삶에 대한 쓸쓸함으로 답해 주었지.
그때 알았어야 했다.
너의 아픔과 슬픔을.
철새가 석양 속 하늘을 가르던 그 해 가을
너는 영정 속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았지.
30년 전 너를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웃음이 쏟아질 것 같은 그 미소
나는 그게 서러워서 울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왔다.
네 영정 옆에서 천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아이
그 아이는 까무잡잡하고 갸름한 너를 닮지 않았더라.
그래서 나는 그만 살짝 웃고 말았어.
너는 내게 그런 아이였다.
30년 전 우물쭈물 서 있는 나에게
나풀나풀 날아와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었지.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사이였던 것처럼.
하지만 너는 사교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너는 말이 없는 편이었지.
철새가 하늘을 가르던 석양 아래에 서면
항상 네가 떠오른다.
웃음이 쏟아질 듯 커다란 미소로 다가왔던,
넌 내게 그런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