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2월이란

변하는 것들 속에 변하지 않는 것

by 연구하는 실천가

학교에서 교사에게 2월은 다른 달과 많이 다르다. 달력은 이제 첫 장을 뗐는데 학교는 마지막 장을 넘긴다. 새해의 시작 그 한가운데에 끝의 헛헛함이 일렁이는 2월이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공사로 학교 사방이 삐걱거리고 운동장과 복도에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면 2월의 스산함은 배가 된다.

"선생님, 학교 옮기세요?"

막 11살이 시작되는 여자 아이는 동그란 눈을 내 얼굴에 심하다 싶게 들이밀고 물어본다.

나는 약간 당황해하며, '으응, 누가 그러더니?' 하며 질문의 핵심을 피해 본다.

" 학교 현관문에 '오시는 선생님, 가시는 선생님' 이름에 선생님 이름이 있어요."

"그렇구나."

그저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어색한 이별의 과정을 어김없이 또 거쳐야 하는구나 싶다.


1년 단위로 겪는 반 아이들과의 이별과 별개로 대개 4년을 기점으로 겪는 학교의 이동에 따른 이런 헤어짐이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새로운 곳으로의 전출은 여전히 막막하다. 며칠 뒤 있을 송별회 때는 어떤 담백한 인사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아쉬움 묻어나는 느낌을 전달할 것인가? 또 일주일 뒤 있을 새 학교에서의 전입 인사 때는 어떤 적당한 인사말로 발랄하면서도 센스 있는 느낌을 전달할 것인가? 아니 이런 것도 이제는 너무 의식적이라 싫어진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너무 가볍지 않은 그 어딘가에 나를 안착시키고 싶은 이런 감정을 또 감당해야 한다.


전입학교에서 막 문자가 왔다. 학년과 업무 배정이 확정되었으니 메일로 확인하라고. 메일 속 건조한 언어들 낯선 이름들 사이에 엉거주춤 아있는 나의 이름이 보였다.


이런 황무지은 2월의 끝에 작은 오아시스처럼 나의 생일이 있다. 생일을 앞둔 엊그제 저녁, 아들은 내게 팥밥과 미역국 하는 방법을 몇 번이고 물었다. 같은 질문을 자꾸 하는 아들이 귀찮아진 나는 유튜브를 보거나 내일 아침에 다시 가르쳐 줄 테니 그만해라고 짜증을 냈다. 다음날 아침 역시나 아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아침을 굶을 위기에 처했다. 생일날 아침은 내가 하지 않는다는 내 맘대로 정한 나의 원칙 때문이다. 늦잠꾸러기 남편이 웬일로 일찍 일어났다.(생일날 굶기면 그 날벼락이 아들보다는 자기에 먼저 내릴 거란 걸 남편은 그동안의 생존전략으로 깨우치고 있었을 것이다.) 내게 열심히 물어보며 밥과 국을 준비했다. 내가 하는 게 더 편할 정도로 하나하나 물어보며 귀찮게 했지만, 나는 그렇게 겨우 겨우 얻어먹는 생일 아침밥이 항상 맛있다. 늦게 일어난 아들은 '엄마 미안해'를 한 번 외칠뿐 전날의 의욕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생각없이 밥만 잘 먹었다. 항상 느끼지만 아들의 말뿐인 의욕은 처음에 나를 감동시키고, 남편의 무기력은 순간만 나를 화나게 하고, 결국 실질적인 부분에서는 남편이 아직까지는 아들보다 2% 정도 나은 편이다. 이렇게 조금은 귀찮지만 끝끝내 얻어먹는 소소한 생일밥으로 나는 쓸쓸한 2월의 허기를 따뜻하게 채워 넘길 수 있다.


2월이 되면 바뀌는 많은 것들을 나는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부담스럽지만, 그렇게 2월은 변화를 싫어하는 나를 다독이며 조금씩 나를 성장시켜왔다. 그래서 2월은 나에게 껄끄러운 존재지만 그래도 제법 견딜만한 행복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견뎌내게 해 준 것은 2월마다 두 남자가 서로 내 눈치를 보면서 해 주는 생일밥 덕분이다.

"야, 너희들 생일 선물은 없나?"

"엄마, 한 달 전에 줬잖아. 대학합격증."

"아.. 맞네.(뻔뻔한 건 아빠 유전자 때문인가?) 그럼 당신은?"

"2주 전에 줬잖아. 여행 가서 사준 핸드백."

"아... 그게 생일선물이었나?(맞네. 같은 유전자)"


그래서 변하는 것들도, 변하지 않는 것들도 나는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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