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이곳도 결국 신기루일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이 주는 불편함과 부담감이 이제는 없을 나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낯섦은 심장을 돌처럼 덜거덕거리게 만들었지만 늙은 나이의 낯섦은 그 돌들이 팍팍한 알갱이로 부서져 내 마음속을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이제 본 지 이틀 된 그녀는 계속 내 나이를 들먹거리며 나를 규정짓고 싶어 했다.
또 이 곳의 낯섦은 일단 그전에 있던 곳에 비해 모든 게 너무나 반듯함에 기인한다. 연식이 20년이 되어 가는 그 전 학교와 4년 차의 이 학교의 차이겠지만, 이 반듯함이 주는 허허로움은 단지 그것뿐인 걸까? 내 공간에 항상 존재해 왔던 가득하던 서류 뭉치와 각종 쌓인 물건들, 그리고 복도에서 들리던 미세한 공사 소음과 창틀에 쌓여있던 뿌연 먼지가 어느새 나의 평화였던 것일까? 새 교실, 새 학교는 너무 정결해서 이 곳의 사람들처럼 너무 매끈거린다. 그래서 먼지 한 올 털어내기 위해 책상 위를 훑는 내 손끝까지도 괜히 신경이 곤두선다.
예전 동료들과 둘러앉아 책상 두드리며 깔깔대던 나는 이제 조신하게 앉아서 적절한 타이밍에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보지만, 내 입은 이쪽 세계의 금기어인 '우리 학교에서는'이라는 말을 자꾸 내뱉는다. 또 그들의 말 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 30% 정도의 말들-대략 작년에 했던 행사나 활동, 조직, 사람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다음 말을 예의 주시하여 문맥으로 파악하며 가벼운 리액션을 해 본다. 일단 내 경력이나 나이를 볼 때 아무리 다른 곳에서 전근해 왔지만 이 정도를 내가 모른다는 인상을 주며 나를 쉽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나의 얄팍한 자존심 싸움.
그렇게 오아시스인지 신기루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터전에 짐을 푼 외로운 유목민은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조용하기만 한 학교와 여전히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나날이 새롭기만 하다.
무슨 미련인지 아직도 '우리 학교'라 부르는 그 전 학교를 떠나오면서 내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에 대해 그 학교의 친한 동료는 농담조로 이렇게 나를 타박하였다.
'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님이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렇게 담담하게 인사를 할 줄은 몰랐네.'
나는 그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이제 감정 같은 거 키우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난 감정을 드러내는 걸 대체로 싫어한다. 내 기억 속에 누구 앞에서 울거나 화내거나 슬퍼한 적이 나는 거의 없다.(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는 잘 운다.) 누가 나를 동정하거나 걱정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술도 과하게 마시지 않는다. 억눌러 있던 내 감정이 어디로 튈지 나 스스로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의 바다를 벽에 가두며 살아왔기에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 학교 송별회 날 사실 나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냈었다. 그날 좁은 고깃집 식당 홀에서 나를 비롯해 학교를 떠나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주르륵 한 줄로 늘어서서 돌아가며 떠나는 마음을 전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차례로 이어지는 지루한 인사말을 들으며 내 차례를 기다릴 때 나는 왜 이런 거추장스러운 형식을 갖추어 전체 앞에서 이런 인사말을 해야 하나 싶어 마뜩잖고 불편했다. 그래서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하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짧게 던진 말이 "제가 앞으로 어디 가서도 우리 학교만큼 그 학교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기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십시오. "라는 뜬금없는 사랑 고백 멘트였다. 그 순간 나답지 않은 감정적인 표현을 써 버렸지만 실은 진심에 가까운 고백이었고 속으로 울컥했었다. 여기서 보낸 4년이 힘들었던 만큼 뜨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표시는 안 났지만 나답지 않게 울컥거리며 '우리 학교'를 떠났고, 그 말처럼 아직은 심적으로 '우리 학교'가 아닌 이 학교를 언젠가 사랑할 수 있게 되어 빨리 '우리 학교'의 기억을 '그 학교'의 추억으로 돌리고 싶다.
붙박이 체질을 타고난 집순이인 나를 3, 4년마다 보따리를 싸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 만드는 직업적으로 유목민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나는 항상 적응만 연습하다 마는 삶을 사는 듯했다. 그리고 자꾸만 동료나 소속감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또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쑥스럽게 만나며 예전 아이들을 덤덤하게 올려 보내는 내 감정 속에 뿌듯함보다는 헛헛함이 컸던 것 같다. 차라리 한 반을 6년 동안 끌고 간다면 서로 부담이 되겠지만 이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는 마음이 엄청 뜨거워지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에 수시로 부대끼며 차라리 감정을 내 몸에서 떼어내어 서랍 깊숙이 넣어두는 것이 더 편해진 나는 이제는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를 찾았으면 한다. 매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에 대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다 보면 내 감정들이 정신없는 커리큘럼의 파도 속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이래 저래 사람에 지치고, 감정이 소모되는 에너지로 내 심신은 항상 과부하에 걸렸다.
그러다 '목표가 아닌 목적의 삶'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문뜩 떠오른 생각, 나는 그동안 목적 없는 목표를 세워왔던 게 아닐까? 자꾸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높게만 목표를 세우다 보니, 나의 오아시스는 점점 메말라가고 내 마음은 자꾸만 떠돌이의 삶을 살았던 게 아닐까. 일의 목표가 아닌 나의 삶이라는 목적에 맞춘다면 더 이상 나는 유목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나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결국 나의 목표는 나의 만족감, 사실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 결국 비교 대상이 되고 나는 불행과 불운을 탓하며 나 스스로 유목민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내 발은 신기루가 되어버린 사막을 걸어갔다. 이제는 신기루 같은 목표보다 나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목적을 찾기로 했다. 학교를 옮겨도, 사람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내 삶의 목적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가슴 아래로 내려가 있었을 뿐. 내가 이 곳에 존재하는 목적, 그것은 아이들이었다. 결국 내 심장을 뛰게 한 것은 일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목적이었다. 그럼 나는 잘 짜인 학급 운영 목표가 아닌 아이들의 삶에 작지만 누군가 한 명일 지라도 그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변화 하나를 만드는 것, 그 속에서 내가 햇살처럼 웃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2020년 봄에 나는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를 찾아 유목민의 삶을 끝내고 내 목적 속에 안착해 보려 이렇게 또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