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는 내게 구원이었다

인생은 아리랑 고개이다

by 연구하는 실천가

작년 이맘때 나는 50을 앞둔 49세로서 가을비에 젖어 행인들에게 밟 뒹구는 낙엽들을 보며 낙엽이 마치 나의 실존 것 같 서러움에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자연의 섭리인 한 살 더 먹는 것을 무슨 대단한 일을 치르는 것인 양 지천명 운운하며, 마나 나이의 의미를 논했가. 그렇게 유난스럽게 50 맞이를 치른 일이 엊그제인데, 이제 50세의 끝자락에서 51세를 바라보는데 놀랍게도 아무 느낌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40의 끝자락에서 50의 시대를 두려워했던 것은 남들에게 50대로 비칠 내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런 이제는 50대 중에서 가장 젊은 자라는 여유와 호기를 부리게 된 것이다. 이 여유가 6, 7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둔 한정적인 인지 또 50대 후반이 되60을 맞을 두려움에 전전긍긍 요란법석을 떨지도 모른다. 그때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온 누님>처럼 세상의 눈에서 달관 여유로움을 갖게 되길 라본다.


어중간한 인생을 돌아보면 나의 고비는 9자를 달 때마다 있어 왔다. 9살과 19살 때도 있었지만 먼 시절이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고비였으니 차치하고, 29세 때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대는 운명적인 만남만이 진실한 사랑이라는 어설픈 믿음으로 원치 않는 솔로의 길을 꿋이 걸어다. 그러다 벼락같이 찾아온 20대의 끝자락에 이르자 '이렇게 30대를 맞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당시는 미혼의 30대 진입은 곧 노처녀라는 딱지가 붙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렇게 굳지 못한 심지의 소유자였기에 30을 전후 1년 동안 인위적인 사랑이라도 찾고자 어색한 만남의 자리를 심히 주말마다 졌다.


39세 때는 '둘째를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 내 인생 최대 고민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었다. 40이 되면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워지겠지 하는 일말의 안도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는 조함 속에서 갖 가정들을 해보며 국 엉뚱하게도 도피처로서 대학원 진학을 택해 버린 시기였다. 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인생의 슬럼프를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49살이던 작년, 다시 삶에 대한 허무감이 밀려와 찾게 된 브런치는 이 곳을 해 매일같이 막글을 써대며 내 실존을 찾아 버둥대던 때였다. 그 속에서 내 실존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다시 10년의 유예기간을 벌어 지금은 이렇게 여유만만 50의 출발에 서 있다.


나에게 9라는 숫자는 국 구원이 되었다. 인위적인 만남이었지만 감히 운명적이라 믿고 싶은 남편을 만났고 둘을 키우는 이상의 기쁨과 고민 안겨준 하나뿐인 아들을 가졌으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실존을 계속 두드리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결국 9의 고비는 내게 고통스럽고 허무했지만, 내게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그 1년의 고통은 곧 기쁨이었고, 기쁨은 곧 고통이기도 했다. 이 아리랑 고개 같은 오르락 내리락이 나를 넘어지게 하고 다시 일으켜 웠다. 어김없이 아리랑 고개는 나타날 것이고 힘겹게 오른 만큼 아래로 내려갈 순간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올해 이의 끝자락에 낙엽처럼 휘날리는 9를 달고서 삶의 언덕에 서 있으신 분들, 너무 걱정 마세요. 이제 곧 새로운 나이대에서 가장 젊은 반열에 오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실존의 고통 속에 잠수할 수록 결국 길이 보이고 그것이 구원의 동력이 어 상승하실 겁니다.


특히 금 인생의 한 고개 중턱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19살 나의 아들아. 지금 한참 힘들지? 너의 헐떡이는 숨이 여기까지 려 마음이 아프지만 너의 고개는 이제 다 올라왔어. 이제 남은 고개 힘껏 올라 날아오르 돼. 비상하렴. 높이. 너의 20대를 향해.


그리고 모든 9님들. 모두 자신의 새로운 고개를 향해 두려워 말고 르세요. 고개 넘어 높고 넓은 평화로운 초록 언이 곧 보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