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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이시네요

by 연구하는 실천가

tv 드라마를 보던 아들이 남편을 슬쩍 보더니, 대뜸 "아빠, 안내상 닮았다" 말하는 게 아닌가.

남편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 정말 안내상 닮았어?"

나는 짐짓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전혀 안 닮았어. 당신 박신양 닮았잖아."라고 말했다.

물론, 아들에게는 찡긋 눈사인을 보냈지만.

예전에 전도연이 출연한 [굿와이프]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상큼한 눈웃음의 매력으로 소녀 이미지가 강했던 전도연이 그 드라마에서는 잔주름이 제법 잡힌 세련된 중년 여성의 얼굴로 나와서 왠지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그런 전도연의 모습에 대해 여배우로서의 관리 부족이라는 질책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칭찬이 함께 나왔었다.


학교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일까?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선생님들이 많다. 그런 선생님을 보면 부러운 마음에 말하게 된다.

" 동안이시네요."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내게 다시 그 말을 돌려준다.

" 선생님이 더 동안이세요."

나는 피부가 얇아 주름이 잘 가는 편이라 말이 늘 인사치례로 들린다.


흔히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 내 자신의 나이를 평소에 인식하지 못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30대 후반인 10년 전만 해도 물건을 살 때 아줌마라고 부르면, 왠지 마음이 울적했다. 내가 아줌마인게 당연한 나이인데도 말이다. 내가 아줌마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내 스스로 아줌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는 40대가 되면서다. 이제 아줌마라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40대 후반이 되자, 아들은 "우리 엄마 환갑 잔치 준비해야겠네."라고 짓궂게 말하며 날 놀린다. 언젠가 할머니로 불리울 날이 오겠지만 그 때는 할머니라는 호칭이 언제쯤 익숙해질까.


나의 엄마는 80대인데, 10여년 전 쯤인 70대였을 때 아이의 입장에서 습관적으로 부르던 말로 내가 "할머니"라고 부르자, '내가 왜 니 할머니냐'며 버럭 화를 내셔서 나를 무안하게 했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쳐다보는 것을 어색해 하셨다. 여러 사람들 속에 서 있는 나이 든 할머니가 자신이라는 게 그 연세에도 익숙하지 않는 듯 했다.


나도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에게 할머니라고 처음 불리는 날, 10여년 전 아줌마라고 불릴 때처럼 우울해 할까?그리고 그 때는 누군가가 아주머니라고 불러주면 기분 좋게 느낄까?

나는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인 강경화 장관이 하얀 색 단발 머리를 하고 tv에 처음 등장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당당한 흰머리처럼 도 주름 잡힌 얼굴과 흰머리와 나이에 맞는 호칭에 대해 여유롭게 바라보고, 그 자체를 멋스러움이라고 느낄 만큼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새 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젊고 예쁜 선생님을 기대하며 새 교실에서 담임교사를 기다린다. 옆반은 젊고 아름다운 20~30대 선생님일 때, 아이들에게 중년의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늙어가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유쾌하게 표현하면 오히려 더욱 친숙해지며 세대를 넘어 한 마음이 되는 방법으로 더 멋지지 않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듣기 좋은 말이긴 하다.

" 동안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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