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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왜 쫄면을 시켰던 걸까?

by 연구하는 실천가

엄마와 집 앞 분식집에 왔다. 뭘 먹을까 하다 문득 메뉴판에 쫄면이 보였고 오랜만에 먹어볼까 싶어 주문했다.

그런데 왠걸, 내가 생각했던 그 쫄면이 아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끊기다니, 마치 비빔국수와 다를 바 다. 그리고 양념맛도 그냥 밍숭맹숭.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 내가 반 가까이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도 쫄면을 반 이상 남긴 적이 있었다. 이와 반대의 이유로.


정확하진 않지만 대학 입학을 앞둔 2월, 아니면 갓 신입생이었던 3월이었나? 그 시절 흔히 하던 3대 3 단체 미팅.

난 그날 하고 많은 메뉴 중에 왜 쫄면을 시켰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분식집에 가면 난 무조건 쫄면이었다. 쫄면의 그 쫄깃쫄깃함과 콩나물의 상큼함, 매콤달콤한 양념맛이 좋았다. 하지만 그날은 그걸 시키면 안되었다. 나와 같이 항상 쫄면을 먹던 그 친구들도 그날은 하나같이 다른 메뉴를 시켰다는 걸 난 왜 그 때 눈치 채지 못 했을까. 그날 따라 갖춰 입은 흰색 블라우스에 튀어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새빨간 양념을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 음식을 조신하게 먹기는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면발을 입에 넣는 순간, 쫄면이 내 이빨로 끊기에는 너무나 질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분식집 쫄면 면발이 심하게 질긴 것이었을까? 그날 내가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이 미스터리는 이제 미궁으로 빠졌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데 나는 쫄면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한번씩 쳐다 보던 마음 착한 남학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상의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난 그날 쫄면을 많이 남겼고, 유쾌한 기억을 갖지는 못했던 슬픈 첫 미팅이었다.


남편은 추억의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릴 적 먹었던 간식 거리를 보면 그걸 꼭 사 먹는데, 먹고 나서는 그 맛이 아니라고 투덜댄다. 그러면 나는 '맛은 똑같은데, 그때의 당신은 먹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게 너무 맛있게 느껴졌던 거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쫄면을 먹으면서 남편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분명 내가 먹던 그 쫄면, 고무줄처럼 탱탱하고 혀 끝을 톡 쏘던 그 매콤함은 없었다. 그리운 그 맛은 정말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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