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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Nov 21. 2020

남편은 쿨하다

 " 이 소금 싱거운 거 같아."

 소금이 싱겁다니, 이 무슨 '차가운 핫초코'같은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이 밥숟갈로 소금을 가득 퍼서 곰국 그릇에 풍덩 넣고 있었다.  '헐'하는 나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아, 짜다. 어쩌지?" 하는 남편의 외침이 이어졌다.  반찬을 식탁에 놓으면서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 00 이가 먹을 국에서 국물 좀 덜어가."

곰국을 먹지 않는 나를 빼고 준비한 남편과 아이, 두 사람의 국그릇 중 아이의 국그릇을 가리켰다.  반찬 하기 귀찮을 때를 대비하여 항상 냉동실에 쟁여놓는 고기 곰국 한 팩을 열면 딱 2인분 곰국이 나온다.  나는 곰국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남편과 아이에게 각각 한 그릇씩 담아 주곤 한다.


  남편은 그래도 여전히 곰국이 짠지, 아예 아이의 국그릇을 들고 자신의 국그릇에 부었다.

"두 국을 합친 후 다시 나눠야겠..."

 순간 남편이 말 끝을 흐리는 것이 뭔가 분위기가 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편의 말.

 "와, 너무 한 거 아냐? 내 국에는 손톱만 한 고기가 두어 점 들었는데, 00이 국에는 고기 반 국물 반이네."

 그제야, 이 싸한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나는 허둥지둥 소리부터 질렀다.

  " 아니, 잠깐만!  자기야. 그건 오해야.  당신은 고기 많이 든 곰국 별로 안 좋아하잖아.  00 이는 고기 든 곰국 좋아하고. "

 남편은 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 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어디 가서 말 좀 해야겠다. "

  나는 마지막 방어막을 쳤다.

  " 자기야. 나의 애정도를 의심하는 거야. 우리의 믿음이 그것밖에 안 되는 사이였어?"


  한바탕 소동 끝에 먹는 휴일 아침밥.  그런데 뭔가 너무 조용하다.  나는 이 침묵의 원인이 곰국의 고기에 있다고 보고 결국 한마디를 했다.

 " 알았어.  다음엔 9대 1이 아니라, 6대 4 정도로 고기 나눌게.  이제 말 좀 해라."

 " 응? 무슨 말이야. 나 지금 이번 미국 대선 때문에 내일 주식 어떻게 될까 생각하느라 말 안 한 거야.  흐흐"


  남편은 예민하지만 또 의외로 쿨하다.  남편의 쿨함이 빛을 발한 것은 작년 8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내가 BTS에 과몰입해 있었던 그즈음의 일이다.  다음날이 BTS 한 멤버의 생일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남편, 아들과 아침밥을 먹으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아들은 또 시작이라는 눈빛을 내게 날리며  '아, 예.  잘 먹었습니다'하고 먹던 밥을 얼른 마무리하고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을 야속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본 후 나는 남편에게 기대를 걸며 다시 물었다.

  " 자기야.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그래, 또 누구 생일인데?"

  남편은 떨떠름하면서도 성의 있는 말로 물어봐 주었다. 나는 남편의 대꾸에 신이 나서  격앙된 소리로 말했다.

  "바로 정국이 생일이야! 어디에 축하 현수막이라도 만들어 걸까?"

 나의 상기된 표정을 잠시 보던 남편은 부드럽게 다음의 말을 던지는 것이다. 마치 마무리 투수의 강력한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내듯이.

 " 그래. 알겠어.  그런데 일단 오늘이 내 생일인 건 모르는 거 같네."

그러면서 식탁에 놓인 시래깃국을 한 모금 떠 마시며 살짝 미소를 짓는 남편의 퍼포먼스까지 완벽했다.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리고  신혼초 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고 출근한 남편에게 내가 얼마나 분노했는가를 떠올렸다.

'이 무슨 잔인한 운명의 장난인가.'  

 내가 한심한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그 순간의 찰나에, 마침 아들이 나오면서 말했다.

"엄마,  알았어.  내일 내 마지막 모의고사 결과가 드디어 나오는 날이네."

 그리고, 남편의 마지막 공격 한마디가 이어졌다.

"야,  너희 엄마 지금 그런 거 관심 없다. "

"어? 아냐.  알고 있었어.  그리고... 저..  자기야? 나 지금 시장 가서 최고급 한우 사서 미역국 끓여줄게.  밥 먹는 거 중단하고 잠시만 기다려?"

남편은 승자의 은혜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한마디 했다.

"됐어. 나 그런 거 안 따지는 거 알면서."


 그랬다.  남편은 형식과 절차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항상 ‘제사도 대충 지내자, 생일도 대충 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집안 행사도 ‘쉽고 간소하게’를 외쳤다.  그런 부분에서 권위적이거나 보수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날의 나의 웃지 못할 실수를 위트로 받아치는 남편의 쿨함에 나는 현재까지 남편의  최소 일 년 간의 실수를 상쇄해 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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