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하자."
막 설거지를 마치고 앉으려는 나에게 남편의 얄미운 한 마디가 날아왔다.
'뭐라고? 요리에 설거지까지 한 나에게 커피를 타서 주지는 못할 망정 커피를 타오라고?'
나는 항상 그렇듯이 속으로만 분노하였다. 내가 못 들은 척 하자, 남편은 집요하게 한 번 더 말했다.
" 커피 마시자."
"그래, 마시자."
나는 소파 위에 양반다리를 만들어 앉으며 미소를 날렸다.
" 자기야? 커피~~!!."
남편의 세 번째 요청에 나는 결국 끙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남편은 내가 있으면 절대로 스스로 커피를 타지 않는다. 나에게 커피 타 달라고 몇 번이고 애타게 요청한다. 나 같으면 그렇게 못 들은 척, 또는 투덜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나 스스로 타 마실 것 같은데 남편은 끝까지 나에게 타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다정한 남편이지만 실상은 자기가 마시는 커피도 아내를 시킬만큼 아내를 이용하는 문제 남편이 아닐까 하는.
그러다, 한 달 전 일이다.
내가 설거지를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남편은 커피가 당장 마시고 싶었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할 테니, 나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많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 같으면 그냥 커피를 타는 게 편하겠다. "
남편은 설거지를 시작하며 말했다.
" 난 설거지하는 건 괜찮아. 하고 나면 개운하잖아. 하지만 커피 타는 건 정말 싫어. "
그날 나는 예전보다 더욱 신경 써서 커피를 탔다. 남편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의 양과 우유 한 숟갈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설거지하느라 젖은 손을 탈탈 털고 거실로 오는 남편에게 따뜻한 커피와 함께 따뜻한 말한마디도 건넸다.
" 오늘은 침 안 뱉고, 사랑 한 스푼 추가했어."
나의 말에 남편은 씩 웃으며 말했다.
" 이때까지 그 많은 설거지를 어떻게 혼자서 다 한 거야? 어머니 밥상도 하루에 몇 번씩 차리면서. 힘들다고 말을 하지."
" 말 안 해도 애정이 있으면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나?"
나의 말에 이번에는 남편이 못 들은 척한다. 하지만 이날 이후 남편은 예전보다 더 자주 설거지를 하고 나는 정성껏 커피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 20년 만에 알게 되었다. 남편은 유난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아내를 몸종처럼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다른 이가 타 주는 커피 한 잔 마실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