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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25. 2020

너는 나였어

미안해. 아들아.


  " 엄마, 나 또 지갑 잃어버렸어."

지하철인 듯 느껴지는 소음 속에 아들의 목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엄마, 나 지갑 잃어버렸다고."

 퉁퉁 불은 아이의 목소리를 겨우 알아들은 나는 처음 겪는 일도 아니건만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진다.  거기가 어딘가? 여기서 수백 킬로 떨어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설고 낯선 서울의 지하철 한 복판에서 아들이 돈 한 푼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두려워할까 우려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어. 그럼 지금 당장 돈이 없어 어떡해?"

 " 비행기 좌석에 두고 내린 거 같은데,  못 찾았어.  돈은 항공사 직원이 빌려줬어."


    지난 석 달 동안 동아리 때문에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는 아들이 지금까지 잃어버린 현금카드가 3번, 지갑이 2번이었다.  이번에 또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총 10회 올라 간 중에 6회의 분실사고를 겪은 셈이다.   강남 한 복판에서 혼자 밥을 먹고 나오다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되어 식당 주인에게 사정해서 계좌로 돈을 이체하거나, 버스 정류장에 현금카드를 두고 와서 다시 가보니 없어져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교통비를 구걸한 일도 있었다.  그 전에도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으나 집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던 게 화근이었을까?  이제는 이렇게 비행기로 서울을 오가며 그 중요한 돈과 신분증을 수시로 잃어버리니 나는 걱정하다 못해 이제 화가 났다.  이번에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안 아이가 공항 한 복판에서 울상이 되어 직원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이 얼마나 딱해 보였으면, 항공사 직원이 돈을 빌려주었을까 싶다.  


 이런 일에 에누리가 없는 남편에게 내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더니 역시나 '이 미친놈'을 외칠뿐,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이런 일이 생기면,  정작 당사자도 태평인지 감감무소식이요, 남편도 관심을 안 보인다.  오로지 나만이 부산의 한 아파트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애태울 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부리나케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신분증이 없어서 기차로 내려올 거냐?  내려올 차비는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빌릴 수 있니? 아니면 내가 예매할 수 있으려나?"

 나의 연속 질문에  아들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지갑 찾았어.  비행기 내부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어.  그래서 공항으로 가면 바로 찾아서 비행기 타면 돼."

  나의 걱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이는 태평스레 그 말을 내게 전하는 것이다.  나는 어이없는 마음이 들었지만 안도의 마음이 더 컸으므로 너그러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마중 나갈 시간을 아이와 잡았다.


  공항에서 다시 만난 아들은 차를 타며 말했다.

 " 엄마, 나 또 지갑을 비행기에 두고 내렸어. "

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되는 순간, 아이는 재빠르게 말했다.

" 근데 비행기 내리기 직전에 바로 생각나서 찾았어. 다행이지?"

그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 야! 너 그거 병이야.  지금 병원 가자. "

아들은 그제야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 그런 거 같아.  이제 안 그럴게. 잘 챙길게."


 많은 부모들이 느끼겠지만, 나 또한 이 녀석이 내 속에서 나왔지만 가끔 이해불가이다.  너무 엉뚱하고 철없는 소리를 해서 이 아이가 생각이 있는가 싶어 속이 뒤집어지다가도,  깊은 속내를 드러낼 때는 나보다 낫다 싶기도 해서 마음이 애잔하다.  소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는 이렇게 나약하게 키웠나 싶다가도, 어려운 상황을 꿋끗히 이겨낼 때는 속에 뭐가 들었나 싶어 대견하다.  어쨋든 나에게 보이는 아이는 중간 따위는 없고 그저 모자람과 넘침만이 왔다 갔다 하니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걱정이 넘쳐난다.


  그러다, 오늘 그 원인을 찾았다.

오늘 남편과 아들, 이렇게 셋이서 오랜만에  몰운대 산행을 하였다.  맑은 가을 하늘과 숲의 공기는 나의 마음을 한껏 띄워주었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오르막 길의 숨참을 이겨내자,  오밀조밀한 숲길과 다대포 바다의 파도 소리가 동시에 나를 감동시키는 그  순간, 나의 전화기가 울리다 꺼졌다. 그리고 아들의 전화기가 다시 울렸다.  엄마가 다니던 복지관 직원 전화였다.  누군가가 몰운대 주차장에서 내 지갑을 주워서 그 안에 든 복지관 명함으로 전화를 한 것인데 나의 지갑을 발견한 사람이 주차장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혼자 다녀오겠다는 나를 남편과 아들은 굳이 따라 내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정상의 전망대를 200여 미터 남겨 두고 하산해야만 했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올라갈 때보다 열 배는 무거웠다. 그렇게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내려가서 지갑을 찾고 약간의 사례를 한 후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재등산을 시작했다.  다시 왔던 길로 가기가 그래서 옆으로 난 작은 등산로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가보는 그곳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해서 걷는 맛이 났다.  덕분에 우울하고 미안했던 기분을 금방 털 수 있었다.  


  그래, 아들아.  너의 빈 곳은 사실 나의 빈 곳이었어.  하지만 어쩌겠니.  몰운대의 숨겨진 이 작은  등산로처럼 고불고불하고 조금 돌아가지만, 그래도 큰 산길에서 못 보았던 작은 나무다리와 맑은 개울도 있어서 걸을 만하잖니. 우리 그렇게 가끔 돌아가도 속상해하지 말자. 작은 길에 숨겨진 보물 찾기를 하면서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도 내일 서울로 올라갈 때는 지갑 잘 챙길 거지?  너무 자주 돌아가면 다리 아프니까, 마음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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