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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02. 2020

<어쩌다 서울시민>이  될 뻔했던 C군

   



   부산에서도 외곽인 에서 태어나서 자란 C군은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가고, 사람은 태어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속담을 어려서부터 새기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빛나는 청춘이 시작되는 20살 나이에 드어 서울 입성의 꿈을 이루었다.  그렇게 벅찬 가슴을 안고 상한 C군의 서울은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네온사인의 밤거리도, 낭만 가득한 고풍스러운 대학 캠퍼스도 아니었다.  C군서울은 싱글 침대와 책상 하나로 가득 차는 반지하의 하숙방이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C군이 좌절한 것은 아니었다.  C군은 타지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본인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극복해 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으로 C군 삶의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는 코인 노래방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전국에서 모여든 새내기들과의 즐거운 모임과 선배들과의 밥 약속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생활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하숙생들과의 만남도 즐겁게 함께 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강타한 2020년 6월의 서울 생활은 냉혹하였다.  동기들과 거닐고 싶었던 캠퍼스는 낯선 얼굴들만이 C군을 비웃듯 싸늘하게 스쳐 지나갔고, 어렵사리 만난 동기 몇몇과는 색한 대면 인사와 일회성 식사 자리가 전부였다.  선배들과의 밥 약속도 그저 그런 만남으로 마무리될 뿐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기 00 외고, 또는 서울 00고를 다닌 동기들은 자신이 어느 대학을 지원했고 이 대학에 왜 온 것인지 무용담을 늘어놓 지방 일반고에서 올라온 C군과 자신의 차별화를 은근히 시도하는 듯 느껴졌다.  서울의 종합대학만 오면 캠퍼스 잔디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엠티를 가고, 축제를 즐기이벌 대학과 뜨거운 응원전을 벌이며 하루하루 즐거울 줄 알았던 C군은 오늘도 낮 12시에 멍한 눈빛으로 을 깨며 오전 온라인 강의를 몽땅 빼먹은 자신을 한탄하는 신세다.  그렇게 아침과 점심도 굶 국 억양의 영어로 열강하는 면식도 없는 어느 교수의  강의를 들으려 애써본다. 하지만 강의 내용의 절반도 이해 못한 C군은 나중에 강의 영상을 다운로드하여 천천히 보면 되리라 생각하 휴대폰으로 오늘 저녁 만날 동기의 인스타그램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까지 만난 동기들은 간지러운 수도권 역양을 휘날리며 인싸들이 쓰는 어휘와 말투로 촌스런 부산 사투리를 더듬거리는 C군을 신기하게 훑어보았었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은 매일같이 파티를 하는 듯 화려하였고 팔로워 수도 수백이었다.  그렇게 의 자신감과 당당함에 압도 당한 C군은 그래도 오늘 만나는 동기가 경기도지만 일반고 학생이라는 사실이 못내 다행스러웠다.


 C군은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하숙생 8명이 함께 쓰는 화장실 겸 샤워실로 가다  다른 하숙생을 만났지만 그는 C군과 눈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하숙집에서의 낭만은 그냥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씻고 하숙방으로 돌아오니 메일이 와 있었다.  결석이 너무 많았던 강의 수업을 관리하는 대학 조교였다.  메일에는 C군이 결석과 지각너무 많아서 시험과 상관없이 이미 F가 확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C군은 오전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은 자신에게 다시 한번 환멸을 느끼며 작년의 이 맘 때를 생각했다.  


  C군의 말 한마디에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웃고 떠들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고민이 생기면 C군에게 가장 먼저 달려왔었다.  C군은 그들에게 공부도 잘하고 생각도 단단한 친구이자 멘토였다.  공부면 공부, 생활이면 생활,  C군한 마디에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었다.  친구 엄마들도 C군을 만나면 항상 고맙다고 하였다.  학교 야간 경비 할아버지를 괴롭히던 학교 일진C군의 충고 한마디에 바로 수긍하던  카리스마가 이 곳 서울에서는 완전히 와해되고 세상없는 찌질이로 변하였다.  과거의 영광을 잠시 생각하던 C군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그고 내일 당장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나를 추종하며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 나와줄 친구들과 언제든 갈 수 있는 코인 노래방이 있다.  

 그래서  C군은 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긴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 부모님.  이 곳 세상은 생각보다 저에게 크고 무거운 곳이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을 생각하며 입성한 이곳은 그저 입시 생존 경쟁에서 일차 살아남은 자들의 전리품 자랑만이 가득한 또 다른 밀림일 뿐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나약한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됩니다. 그리고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또는 수도권 고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다수여서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여 저는 홀로 외딴섬에 떨어진 어린 갈매기처럼 부산 앞바다를 보듯 부산만을 바라보며 떨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일단 내일 부산으로 내려가고자 하오니 마중을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아들의 카톡을 본 C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다음과 같은 짧은 답신으로 화답하였다.


 "얼른 오너라, 아들아.  그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내려오면 바로 올려 보낼 것이니, 내려 올 생각 따위는 하지 말거라."


 동시에 받은 상반된 메시지에 C군은 한숨을 짧게 내쉬고 저녁 약속 장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C군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 그래도 나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자 지속적으로 동기와 선배들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약속을 잡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뭔가 나와 맞지 않는 분위기가 나를 끝없이 불편하게 했다.  그들의 모든 표현과 행동이 내가 아는 세계와 많이 달랐고 그것은 결국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의 고향이자 쉼터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


  '오늘 만난 동기는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역시 같은 일반고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

 그렇게 조금은 위로가 되는 마음으로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C군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며칠 전 서류를 넣은 대학연합동아리에서 온 1차 통과 문자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면접을 보러 오라용이었다.  

 '그래 어차피 모레 기말고사라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일주일만 여기서 더 참아볼까?'

 C군은 그렇게 하숙집 어두운 골목을 향해 슬금슬금 걸어갔다.



 < 그 후 한 달>

 한번 의욕이 상실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 끝판왕 나의 아들은 그렇게 6월 한 달 동안 저녁 약속을 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숙방 구석에서 한 달을 살고 내려왔다.  그 삶에서 아들이 얻은 것은 학사경고를 아슬아슬하게 면한 학점과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비루한 경험 한 조각, 그리고 방학 때도 매주 서울 올라가야 한다는 대학 연합 동아리 합격 메시지였다.  결국 아들은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지는 못했지만 서울과 친해지려는 노력은 계속 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중에는 갈망하던 부산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서 살고, 주말은 아정이 안 간다는 서울에서 동아리 모임을 하며 방학을 보내 것이다.



[현재]

 " 엄마, 나 이제 서울 사람 좀 된 것 같지 않아. 내 말이 좀 서울말 같지?"

말 끝 처리를 이상하게 하는 아들에게 나는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다.


아들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엄마 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바보같았어. 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야. 사람 관계에 대한 집착과 고립감 나 망상에 사로잡히게 했나봐."

아들은 뻘쭘게 웃으며 C군에서 다시 아들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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