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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May 30. 2020

부부의 위기

  남편과 나는 참 다른 성향이다.  미세한 것에도 민감하고 섬세한 남편과 뭐든 아무렇지 않고 두리뭉실한 나는 그렇게 양 극단에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가진 것에 대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 점이 더 끌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적어도 20년간 부부 사이에서는 큰 위기 없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문제일 때 해당되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문제가 존재할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서로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20년만 우리 부부의 위기 바로 엄마 문제다.  주변의 모든 물건과 시간, 날짜에 대한 엄마의 무한 반복되는 질문으로 하루에도 백 번 넘게 는 나의 이름,  뭔가 하나에 꽂히면 집해서 펼치는 이상한 논리인내를 요하는 해명과 대응, 버려도 끝없이 쌓이는 방안의 휴지와 잡동사니,  밤낮 구분이 어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돌아다니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하  밤에 수시로 일어나 음식을 챙겨주는 상황에 남편은 노이로제가 걸리는 듯 했다.  반면 처음에는 남편보다 더 힘들어 하던 나는 점차 그런 엄마에게 연민의 마음이 커지고 적응하면서 자동반사 같이 반응하며 익숙해져갔다.  그러자  지쳐버린 남편은 오히려 일상을 되찾 나에게 날선 말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말에 상처 입고 빈 방에 홀로 앉아 을 때가 많아졌다. 그렇게 서로에게 말 많던 우리가 점차 말을 잃어갔고, 서로에게 이해받지 못함에 상처 받았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함께 자고 싶지만 따로 자는 것이 좋아]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한 달 남짓 살아본 결과 그래도 함께 잠을 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던 침대에서 각자 휴대폰 보던 그 한 두 시간이 사실은 서로에게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각자 휴대폰을 보면서도 말을 걸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던 시간들이었다.  오늘 하루의 힘듦을 털어놓고 위로의 말을 건네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저녁을 먹고 잠시 거실에 앉았다가 각자의 잠자리로 가 버리니 함께 교감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함께 숨쉬기만 했더라도 그렇게 한 공간의 의미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각자의 잠자리에 익숙해져 갔다.


 나는 결국 남편에게 힘들면 직장 근처에 방을 얻어 나갈 것을 요청했다.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는 남편의 말에 내가 남편을 위해 내릴 수 밖에 없는 미안함과 섭섭함의  이중적 감정의 결단이었다.  그걸 수락할 수도 있는 남편의 태도에 두려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남편은 거부도 인정도 하지 않고 며칠째 묵묵부답이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물이 점점 얼어 붙기 시작하, 결국은 얼음 같은 유리로 고체화 되고 만다. 액체 상태에서는 벤 흔적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만,  고체는 부서지면 복구할 수 없다.  붙여도 흔적 남는다.  고체가 될 지도 모르는 우리 부부의 감정은 점점 젤처럼 굳어갔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서로를 베어내 우 둘의 가슴은 그 벤 흔적들 자꾸 생채기가 다.


 집을 나갈 것을 요청한 지 일주일 후 나는 남편의 저녁 밥을 차려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오자 왠일로 밥상은 깨끗이 치워져 있고, 설거지도 되어 있다.   때 남편이 나를 불렀다.  화장실 청소를 했다며 깔끔해진 화장실을 보여 주었다.  일주일 만에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생채기난 내 가슴의 흔적들이 옅어짐을 느꼈다.  나는 표정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진작 좀 하지."

왜 칭찬의 말을 이렇게 못됐게 하는 걸까. 나는.


  우리는 함께 재미있게 보아 왔던 드라마 [ 부부의 세계]의 끝자락에서  부의 위기를 맞았고, 다행히 마지막 장면을 웃으며 보게 되었다.  남편의 인내로 다시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다.   남편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슬쩍 들었다.

 " 엄마는 딸이니까 쉽지 않은거야.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게.  아무래도 나와는 다른 입장이니까. 그 정을 쉽게 뗄 수 없겠지. "

남편의 마음을 알지만 자꾸 섭섭해지고, 미안해지고, 고마워지고, 슬퍼지는 시간들이 조금씩 흐르고 있다.

엄마에게도 자꾸 미안해지고, 자꾸 죄송해지고, 자꾸 화가 나고, 자꾸 자꾸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는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시간 자꾸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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