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참 다른 성향이다. 미세한 것에도 민감하고 섬세한 남편과 뭐든 아무렇지 않고 두리뭉실한 나는 그렇게 양 극단에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가진 것에 대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 점이 더 끌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적어도 20년간 부부 사이에서는 큰 위기 없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문제일 때 해당되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문제가 존재할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서로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20년만에 닥친 우리 부부의 위기는 바로 엄마 문제였다. 주변의 모든 물건과 시간, 날짜에 대한 엄마의 무한 반복되는 질문으로 하루에도 백 번 넘게 찾는 나의 이름, 뭔가 하나에 꽂히면 집착해서 펼치는 이상한 논리에 인내를 요하는 해명과 대응, 버려도 끝없이 쌓이는 방안의 휴지와 잡동사니, 밤낮 구분이 없어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돌아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하여 밤에도 수시로 일어나 음식을 챙겨주는 상황에 남편은 노이로제가 걸리는 듯 했다. 반면 처음에는 남편보다 더 힘들어 하던 나는 점차 그런 엄마에게 연민의 마음이 커지고 적응하면서 자동반사 같이 반응하며 익숙해져갔다. 그러자 지쳐버린 남편은 오히려 일상을 되찾은 나에게 날선 말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말에 상처 입고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그렇게 서로에게 말 많던 우리가 점차 말을 잃어갔고, 서로에게 이해받지 못함에 상처 받았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함께 자고 싶지만 따로 자는 것이 좋아]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한 달 남짓 살아본 결과 그래도 함께 잠을 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던 침대에서 각자 휴대폰만 보던 그 한 두 시간이 사실은 서로에게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각자 휴대폰을 보면서도 말을 걸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던 시간들이었다. 오늘 하루의 힘듦을 털어놓고 위로의 말을 건네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저녁을 먹고 잠시 거실에 앉았다가 각자의 잠자리로 가 버리니 함께 교감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함께 숨쉬기만 했더라도 그렇게 한 공간의 의미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각자의 잠자리에 익숙해져 갔다.
나는 결국 남편에게 힘들면 직장 근처에 방을 얻어 나갈 것을 요청했다.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는 남편의 말에 내가 남편을 위해 내릴 수 밖에 없는 미안함과 섭섭함의 이중적 감정의 결단이었다. 그걸 수락할 수도 있는 남편의 태도에 두려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남편은 거부도 인정도 하지 않고 며칠째 묵묵부답이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물이 점점 얼어 붙기 시작하니, 결국은 얼음 같은 유리로 고체화 되고 만다. 액체 상태에서는 벤 흔적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만, 고체는 부서지면 복구할 수 없다. 붙여도 흔적이 남는다. 고체가 될 지도 모르는 우리 부부의 감정은 점점 젤처럼 굳어갔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서로를 베어내며 우리 둘의 가슴은 그 벤 흔적들로 자꾸 생채기가 생겼다.
집을 나갈 것을 요청한 지 일주일 후 나는 남편의 저녁 밥을 차려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오자 왠일로 밥상은 깨끗이 치워져 있고, 설거지도 되어 있다. 그 때 남편이 나를 불렀다. 화장실 청소를 했다며 깔끔해진 화장실을 보여 주었다. 일주일 만에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생채기난 내 가슴의 흔적들이 옅어짐을 느꼈다. 나는 표정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진작 좀 하지."
왜 칭찬의 말을 이렇게 못됐게 하는 걸까. 나는.
우리는 함께 재미있게 보아 왔던 드라마 [ 부부의 세계]의 끝자락에서 부부의 위기를 맞았고, 다행히 마지막 장면을 웃으며 보게 되었다. 남편의 인내로 다시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남편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슬쩍 들었다.
" 엄마는 딸이니까 쉽지 않은거야.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게. 아무래도 나와는 다른 입장이니까. 그 정을 쉽게 뗄 수 없겠지. "
남편의 마음을 알지만 자꾸 섭섭해지고, 미안해지고, 고마워지고, 슬퍼지는 시간들이 조금씩 흐르고 있다.
엄마에게도 자꾸 미안해지고, 자꾸 죄송해지고, 자꾸 화가 나고, 자꾸 자꾸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는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소중한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