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Dec 13. 2020

너무 다른 우리 부부의 재테크 이야기

   우리 부부의 요즘 관심사는 전원주택이다.  웬일로 성향이 극과 극인 우리 부부가 이처럼 공통 관심사를 가졌나 싶지만, 이 또한 조금만 대화해 보면 서로의 꿍꿍이가 딴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 전원주택이란 햇볕 드는 마당 한편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우고 벤치나 평상에 앉아 바람을 쐬며 책을 읽는 꿈을 꾼다면, 남편은 그런 내가 해다가 바치는 유기농 식재료의 시골밥상을 날름 받아먹으며 조용한 골방에 틀어 박힌 주식 전업자를 꿈꾸는 것이다.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나는 경제에 관해서는 완전 꽝이다. 그래서 당연히 월급 관리도 각자 한다.  

남편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빚을 내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목돈이 생기면 명품백을 사는 것보다 빚을 갚는 게 더 즐겁다.  그래서 남편의 주식계좌에는 항상  큰 숫자의 돈이 들락거리지만(실상은 현금화되기 전 신기루처럼 날아가는) , 내 통장은 항상 0에 가까이 수렴된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 집 값이 꿈쩍도 안 함에도 옆동네 집값이 치솟자 상대적 박탈감에 부들거리지만, 나는 내 집이 있어 부동산 걱정 안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처럼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남편과 주어진 현실이 곧 이상이라 믿는 느긋한 아내. 이것이 너무나 다른 우리 부부의 실상이다.


  오늘도 남편과 나, 아들은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남편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우리 아파트를 보고 대뜸 내게 질문처럼 소리를 지른다.

 "  저 아파트는 저렇게 도색을 해서 보기 좋은데, 왜 우리 아파트는 안 하는 거야?"

 " 관리사무소에 물어봐."

나의 명쾌하고 평온한 대답에 남편은 잠시 말이 없다 계속 화가 나는지 또 같은 말을 소리친다.  이번에는 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아들에게 아재 개그를 던지며 낄낄거렸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멀리서 보면 서로 대화를 하는 듯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적금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는커녕 빚까지 내서 주식과 부동산에 밀어 넣어 그 빚을 갚기 바쁜 삶을 사는 것이 나는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금융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경제 무식자인 나는 그저 남편이 하는 것을 불안하게 바라볼 뿐 차마 말리지는 못했다.  더구나 내 눈에 남편이 돈을 버는 경우보다 잃는 경우가 더 많아 보였기에 더욱 불안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즘 같은 재테크의 시대가 올 줄을 미처 몰랐던 나에 비해 남편은 선견지명이 있어 재테크의 시대를 미리 준비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의 과도한 안정 지향주의가 오히려 시대에 뒤처진 불안한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너는 이렇게 주식이 상승하고, 부동산 가격이 널뛰는 걸 보면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냐'는 남편의 질문에 '나도 투자했어. 그게 당신이야. 그러니 잘해라'라고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전 국민이 주식과 부동산에 올인하는 재테크의 세상이 와서 모두가 벼락부자의 꿈을 꾸고 벼락 거지가 되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는 시대에 나는 남편 덕에 그러한 속물적 근성을 은근히 숨기며 고상한 인간인 척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이 옆 동네 아파트가 일 년 만에 일억이 오르는 거에 주먹 불끈 쥐고 분노할 때, 나는 우리 아파트 시세도 모르며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늘에서 일억만 떨어지면 좋겠다는 남편의 유아적 투덜거림이 처음에는 속물 같아 보였지만, 지금은 귀엽게 보인다.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은 월급을 쪼개서 적금 넣는 것 밖에 없다고 믿은 내가 그나마 남편 덕에 소위 말하는 주식과 부동산의 시대에 벼락 거지가 되는 듯한 씁쓸함을 덜 느끼며 살아가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10년이 훨씬 넘은 남편의 재테크 능력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더 씁쓸한 게 함정이다. )


 이처럼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꿈을 꾸며 사는 우리 부부지만,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기에 더 믿고 안심하는 측면도 있다. 내가 우회전을 할 때, 남편이 좌측을 봐주고, 남편이 좌회전을 할 때 내가 우측을 봐주는 것처럼. 그래서, 남편의 꿈처럼 언젠가 10억을 벌어서 세계여행을 다니게 되든, 나의 꿈처럼 작은 전원주택에서 채소를 키우며 살게 되든 일단 남편의 꿈을 함께 꿈꿔주기로 한다.


  그래서 이제껏 꿈쩍도 않던 우리 아파트 가격이 이제 겨우 살짝 꿈틀거리자 남편의 엉덩이도 함께 들썩대며 아파트 도색을  얼른 하라고 일개 아파트 입주민에 불과한 내게 자꾸만 요구해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꾹 참고 아재 개그를 건네며 진정을 시킨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은 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