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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01. 2021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고, 뭘 바르는데 이렇게 시원하노. "

퉁퉁 붓고 거칠거칠한 엄마의 발에 로션을 듬뿍 발라 문지르니,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발이 이렇게 거친데도 내가 로션 한 번 안 발라줬구나. 미안해. 엄마."

엄마의 말에 나는 속내를 털어놓고야 말았다.

"무슨 소리고.  니가 얼마나 바쁜데."

추운 겨울, 창문 밖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집 안에서 두 모녀가 이렇게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 전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엄마도 서로에 대한 섭섭함과 부담감으로 지쳤었다.  서로 애를 쓰다 지쳐서 또 섭섭해하고 그 섭섭함이 살얼음 같은 냉랭함으로 서로를 묶었다 풀었다 하느라.


 "오늘 또 경로당(주간보호센터) 안 갔제? "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못 갔다. "

 "그게 말이 되나.  할머니가 안 간다 해서 결국 차량에 못 태웠다고 00 이가 말하더만.  내일은 꼭 가라.  자, 약속!"

화내는 척 하지만 눈웃음을 치는 나와 투덜대는 척 하지만 슬쩍 웃는 엄마는 다시 오래전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아들이 며칠 전 했던 말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엄마는 할머니랑 친했던 적 있어?"

아들 눈에 나와 엄마는 항상 으르렁대는 사이였나 보다.  내 나름대로는 잘하려고 했고, 좋았던 적도 있었는데 아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가 어렸던 때, 같이 살지 않았던 그때까지는 엄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모녀였다.  그러다 엄마가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아들에 대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엄마를 배려하지 못한 나는 엄마의 크고 작은 잔소리와 간섭에 조금씩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없이 인자하고 뭐든 받아 주는 너그러운 친정 엄마의 이미지가 그리웠고, 엄마는 살갑고 애정 넘치는 딸의 이미지가 그리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조금씩 미워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엄마에게 어느 날 치매가 찾아왔다.


 시작이 어디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나브로 변해갔던 엄마의 까탈스러움과 그것을 전쟁 치르듯 맞서던 내가 엄마의 치매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기까지 수년이 흘렀다는 정도밖에.  엄마의 기분을 참아내며 맞추어주다가 결국 폭발하고, 다시 맞춰주고를 반복하며 엄마의 상태는 나빠졌다.  나는 속으로 차라리 이 상황이 어떻게든 끝났으면 싶다가도 그런 내 속마음을 후회하고, 엄마를 하루라도 빨리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셔야겠다 싶다가도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코로나가 우리를 할퀴던 작년, 엄마의 상태는 최악으로 달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집안의 물건들을 뒤집어엎고, 온갖 말을 내게 퍼부었다.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하고 엄마를 맡길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코로나 때문에 결국 엄마를 입소시키려는 마음을 접고야 말았다.  이렇게 엄마를 들여보내면 기약 없을 이별이 두려웠다.  그리고 차선의 방법을 택했다.  병원에서 약을 강도 높게 지어 꾸준히 엄마에게 먹였다.  그러자 한 달 후 엄마는 완전히 변했다.  순하고 부드럽고 인자한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애잔하면서 미안하고 감사하다.  나는 덕분에 이렇게 엄마를 계속 보면서,  발을 마사지하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만약 그때 엄마를 요양원이나 병원에 보냈으면 어떠했을까?  엄마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던져진 그곳에서 멍하게 빈 허공만 보고 있었을까?


  엄마를 모시고 한 달 전, 반찬가게에 갔을 때다.  그때는 정말 힘든 때였다.  가게 주인은 나와 함께 온 엄마를 보더니 말했다.

"아휴, 엄마가 옆에 계셔서 좋겠어요."

"모르면 그런 말 마세요."

지금 생각하면 냉랭한 나의 대꾸에 가게 주인은 속으로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네. 엄마가 내 옆에 있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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