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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18. 2021

치매 엄마와 사는 법

  치매에 걸린 어른과 함께 사는 것,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나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수 백번도 넘게 고민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최대한 집에서 모셔보자는 마음을 굳혀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좋은 시설의 환경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것만큼 치매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가족들을 그야말로 한계상황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꼭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에 대한 나만의 처방법을 적어볼까 한다.


(아래 글은 저의 상황일 뿐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1단계. 반박하지 말고 인정해 주기

치매임을 아는 것은 보통 성격의 변화 또는 소소한 망상의 시작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엄마는 원래도 고집이 있었지만, 점차 성격이 괴팍해지면서 망상 현상을 보였다.  예를 들면, 가족들이 자신을 두고 외출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각자의 일로 집에 늦게 들어와도 자신만 따돌리고 저희끼리 놀러 갔다고 여겼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본인의 방에 숨기기 시작했다. 주로 수건, 휴지 등을 사 두면, 모두 사라졌는데 나중에 엄마 방에 가득 쌓여 있었다.  어떤 물건이 사라져서 찾아보면 엄마 방에 있고, 그것을 가져가려 하면 본인의 물건이라고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오늘의 날짜, 본인의 나이, 계절, 시간 등을 묻고, 확인하고 의심해서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이 시기의 힘든 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말과 행동을 자신에 대한 비난과 무시라 생각하고 감정이 수시로 폭발한다는 점이다.


<예>    지금 어디고? 너희들끼리 영화 보러 갔제?

           리모컨 어디 갔어?  내가  TV 보는 게 싫어서 숨겼제?

         

[극복 방법]

 : 환자의 말에 굳은 표정이나 딱딱한 말투를 하면 결국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일단 불안과 망상이 시작되었음을 인정하고 병원에서 적절한 진단과 투약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  또한, 건강관리공단에서 치매 등급 판정을 받고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환자의 억지에 절대 화를 내지 말고, 환자가 정말 원하는 것인 관심과 사랑이므로 환자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실제 상황 >

[엄마의 말]

"거실 리모컨 어디 갔어? 니가 숨겼지? 이제 내가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어? "

[잘못된 대응]

"리모컨, 오늘 엄마가 사용했잖아.  그걸 누가 숨겨.  왜 그런 억지를 부리는 거야."

[올바른 대처법]

" 그래? 리모컨이 안 보이는구나.  우리 엄마 속상하겠네.(꼭 안아주기) 한 번 찾아보자.  내가 찾을 동안 이거 좀 드시고 있으세요.(주제 전환하기) 어? 여기 있네. 엄마 손자가 잘못 뒀나 보다.(환자가 방에서 숨겨 두었더라도 추궁하지 말기)  이제 보이는데 잘 두라고 할게.


2단계.  함께 있어 주기

 이제 치매는 중기에 접어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이, 이름, 시간, 공간, 계절에 대한 혼동과 불안이 절정에 다다른다.  바깥에 나가면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방금 있었던 일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의 얼굴 및 익숙했던 주위 사물과 공간이 낯설게 느껴져 물건의 사용과 의식주를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움과 분노와 불안, 초조가 극에 달한다. 약과 밥 먹기를 거부하며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며 물건을 던지고 집을 뛰쳐나간다.


 <예> 여기가 어디고? 우리 집에 갈란다.

          니가 누고? 당장 나가라!


[극복 방법]

 :  갑자기 보이는 폭력성에 두려워하지 말고 의사에게 증상을 자세히 알려 적절한 약을 투약해야 한다. 약을 잘 먹지 않으면 가루로 된 약과 붙이는 약으로 변경하여 제 때 먹여야 한다.  밥을 거부하면 시중에 파는 환자용 영양식을 먹인다.  최대한 함께 생활하고 잠도 함께 자면서 불안 증세가 보일 때마다 즉시 다독여 주어야 한다.  스킨십과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어야 한다.


<실제 상황>

[환자의 말]

"여기 우리 집 아니야." " 우리 아기 어디 있어?"

[잘못된 대응]

"여기 우리 집 맞아.  아기가 어디 있어. 아기는 원래 없었어."

[올바른 대응]

" 그래, 내일 아침에 우리 집에 가자. 오늘은 나랑 꼭 안고 같이 자자." (인정해 주기)

 "그래, 그럼 집에 가자(동네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오기 또는 장 보거나 외식하고 집에 오기-상황 전환하기)

"아기는 아빠가 놀아 주려고 데리고 나갔어. 좀 있으면 올 거야. 그동안 우리 간식 먹자."(인정 및 상황 전환하기)

  

 

3단계. 아기처럼 돌보기

  주 보호자에 대한 집착과 분리불안을 보이며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밥을 잘 먹지 않고 간식을 주식으로 먹는다. 자신의 부모를 계속 찾으며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을 보인다.  잘 걷지 못해서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옷 입기, 화장실 가기, 씻기, 밥 먹기, 걷기 등 일상생활에 전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예> 어디 가노.  무섭다.  여기 있어라.

         밥 먹기 싫어, 간식 줘.


[극복 방법]

: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챙겨 주어야 한다.  위생적인 부분과 음식물 섭취를 수시로 챙겨서 건강과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주간보호센터 등을 매일 일정 시간 다녀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아하는 활동(유튜브나 ai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 듣기)을 준비해서 망상에 빠지지 않고 즐거운 감정을 갖도록 도와준다.  방에서 함께 잠으로써 자다 깼을 때 두려움과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새벽에 깼을 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주변에 둔다. 불안한 증세나 억지를 부릴 때 사실대로 대응하지 말고 적절한 거짓말로 안심하게 한다.


<실제 상황>  

[환자의 말]

"나는 왜 엄마, 아빠가 없어?"

[잘못된 대응]

"돌아가셨잖아."

[올바른 대응]

"내가 엄마, 아빠 해 줄게."  

(이렇게 말하고 꼭 안아주면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게 맞는 대응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 있으면 온다고 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럽다. )


  일단 환자의 감정 상태가 너무 불안하면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맞는 약물 처방이 우선이다. 그러면 일단 진정 효과가 있다.  나는 엄마가 격해지자, 일주일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엄마의 변화에 너무 힘들다고 울다시피 이야기를 하며 약의 강도를 조금씩 올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엄마가 안정을 찾았다.  그때부터 그 수준의 약에서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꾸준히 먹이고 있다. 그러자 잠자는 시간도 오후 8시~ 아침 6시 정도로 규칙적으로 바뀌면서 내가 저녁 시간에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약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시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엄마 옆을 항상 지켜야 한다.  그 전에는 엄마 혼자 자신의 방에 덩그러니 있고, 나머지 가족들끼리 거실에 모여 있었다면 지금은 엄마가 깨어있는 동안은 무조건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그러자 엄마는 더 이상 소외되는 느낌을 받지 않아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 방에서 나는 같이 잠을 잔다.  엄마가 수시로 자다가 놀라 깨더라도 내가 옆에 있으면 다시 고요히 잠들게 되었다.


 엄마가 잠드는 8시가 되면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 방을 나온다. 그때부터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남편, 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텔레비전도 보고 글도 쓴다.  그러다 가끔은 엄마가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럴 때 엄마는 자신을 혼자 두었다며 화를 낸다. 그런 기미가 보이려 하면 얼른 엄마를 껴안아 주며, '엄마, 방금 남편이 퇴근해서 밥을 챙겨주고 있었어.  혼자 있어서 많이 놀랐지?' 하고 둘러댄다. (어떨 때는 '물 마시러 나왔다'거나 '화장실에 갔다'라고 하면 된다.)


 치매 환자와 함께 살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나마 시간이 좋은 직업이고 아들이 도와주어서 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을 찾으면 엄청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환자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나의 경험상 함께 있어주기가 가장 주효했다.  혼자 방에 두면 외로움과 두려움, 각종 망상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낮에는 주간보호센터를 가거나 방문형 요양보호사가 와야 보호자의 부담도 덜고, 환자의 상태도 호전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오로지 밤 시간에는 보호자가 함께 하고, 낮에는 시설의 도움을 받는다면 집에서 치매 어른을 모시는 것이 무작정 힘들지는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센터가 운영되지 않는 일요일에도 낮에 3~4시간 요양보호사를 부르고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 온다.  


치매는 치료 방법이 없는 질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걸리면 그저 견디고 견디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 요법은 충분히 나와 있다. 따라서 방법만 알면 집에서도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 상황, 환자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나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한 달 뒤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전 중이다.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겪은 나의 고통을 누군가는 좀 더 쉽게 겪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경험을 소소히 정리해 보았다.  한 달 전의 나처럼 고통의 나락에서 요양병원을 알아보며 고민하는 치매 환자 가족이 있다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이 시설보다는 집에서 모실 수 있는 쪽으로 강화되었으면 한다.  현재는 요양보호사 지원이 하루에 3~4시간으로 되어 있다.  늦게까지 직장을 다니는 보호자, 휴일도 하루 종일 치매 어른에게 시달리는 보호자는 그 고통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요양보호사의 지원 시간을 좀 더 늘리고 휴일이나 밤 시간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가 요양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그리고 보호자의 삶도 정상적으로 영위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치매 환자를 모시는 가족들에게 눈물 가득한 지지와 응원을 감히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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