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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Feb 13. 2021

 새해 금연 소동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남편의 문제점 중 하나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이는 아빠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몇 달 전에 처음 알았다.  무려 20년간 숨겨온 비밀을 들킨 것이다. 아이에게 절대 담배는 안된다고 엄포를 놓던 남편이 머쓱하게 된 것이다.  10년 전 아이가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아빠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보인 분노를 알기에, 남편에게서 들켰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남편에게 화를 냈었다.

"그러게, 애가 알기 전에 제발 좀 끊으라고 했잖아."

아이는 조금 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내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헐, 엄마.  아빠 담배 폈어?"

담배에 대한 경멸의 시선을 가진 아이였기에 나는 안절부절 못 하며 엉성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 그래? 옛날에 끊었는데, 한 번씩 그런 거 같기는 해."

 아이는 다행히 더 이상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수십 년 동안 담배를 피워 왔다.  하지만 나의 다이어트가 말뿐인 것처럼 남편의 금연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굳이 금연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정말 끊었으면 하는 속마음은 언제나 강렬했다.  나 스스로 누군가에게 뭘 강요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해서 남편에게 금연하라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저 남편이 금연에 대한 욕구를 꺼내면 옆에서 거드는 정도이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커피 마시는 횟수도 늘어나는 관계로 매일 마시는 커피의 양이 엄청났다. ( 기본이 7잔.  그것도 믹스커피)  그러다 보니 커피로 인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출근하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져 자다 깨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남편이 장거리 출퇴근 운전자이기도 해서,  나는 담배의 니코틴보다 커피의 카페인 중독이 더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올해 초 처음으로 먼저 금연에 대한 말을 내가 꺼냈다.  그것이 문제였다.  과거에도 남편은 새해 초마다 금연 시도를 가끔 했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원래도 예민한데 더욱 예민해져서 나의 신경을 건드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자기가 금연한다고 힘든 것을 왜 내게 짜증이냐고 맞불을 놓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 제안했기에 내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금연 첫날, 남편은 하루 종일 잠을 잤고 밥시간에만 내가 조심스레 깨우면, 남편은 밥을 먹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모든 설거지, 집안일에 대해서 패스인 것은 물론이고, 밥 먹는 와중에 살짝살짝 신경을 건드리는 짜증 섞인 말투는 애써 넘어갔다.  텔레비전 소리에 대한 불만, 방 안 청소 상태 등에 대해 예전같이 않게 짜증 내듯 말했다.  하지만, 금연의 고통을 겪는 중이니 평소 같으면 한 마디 했을 나도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황금 같은 새해 연휴 동안 모든 집안일과 짜증을 받아내며 좋아하는 텔레비전도 잘 못 보며 인고의 시간을 함께 견뎠다.  그리고 사흘 째 되는 날, 남편은 금단 현상도 이제 견딜만하다며 밝은 목소리로 머리나 깎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나는 기쁘면서도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 법이라 했던가?  남편은 한 시간 후  밝은 표정과 말 많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뭔가 찜찜한 마음이 드는 순간, 남편이 사흘 만에 커피물을 끓이는 것에서 느낌이 확 왔다.  

'아, 실패구나.'


  남편은 그렇게 사흘 동안 나를 괴롭히며 동면에 들어간 우주비행사처럼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출근을 하루 앞둔 연휴 마지막 날 다시 담배를 시작해버린 것이다.  나는 갑자기 억울해졌다.  내가 그 연휴 동안 받아낸 수발의 의미는 다 무엇인가?  휴가 기간 동안 집안에 갇혀서 우울한 집안 분위기를 다 참아 냈는데 이건 뭔가 싶은 마음에 울컥 화가 올라왔다.

'휴가 때 잠만 자려고 일부러 작전 짠 것 아냐?'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커피를 마시고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욕구에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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