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글을 오랫동안 쓸 수가 없다. 한 30분 쓰다 보면 기운이 쭈욱 빠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머릿속을 맴도는 글 조각들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기운을 끌어 모은다. 분명 예전에는 나의 시간들 중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주, 그리고 오래 앉아서 썼는데 언제부턴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몇 번을 고쳐 먹은 후에야 겨우 자리를 잡는다. 또 글을 쓰는 것이 마치 운동을 하는 것처럼 숨이 차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쓰는 글들이 주로 가족 또는 나와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보니 내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솔직하되 진실되게, 그리고 딱딱한 곁가지를 벗겨내고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자니 자꾸 뭔가가 따끔따끔 거리며 기운이 정수리 위로 쓸려 나간다. 그래서 자꾸만 심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그래서인지 슬프게도 예전과 같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많이 사라졌다. ( 일종의 슬럼프 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데,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에세이가 보였다. 낯익은 이름의 연예인이 저자라 호기심에 읽어볼까 책 표지를 몇 번 만지작거렸지만, 평소에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데다 작가가 연예인이라 왠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딱히 시간 내어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 일단 책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다른 읽을거리를 고르다가 마땅히 끌리는 책이 없어 결국은 별 기대 없이 다시 그 책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나는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으면서 그전과 달리 책 읽는 시간의 즐거움을 보다 많이 느끼게 된 것이다. 딱히 재미나 감동을 마구 주는 것도 아니고, 글의 이음새가 세련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네 일기장의 글처럼 투박한 면도 있고 매일 누구나 생각하는 생각의 줄기들 중 하나를 그저 가볍게 긁적인 내용임에도 책을 읽는 시간은 왜 이리 맛있는 간식을 먹듯 즐거운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는 너무 무거운 책 위주로 읽어 왔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유명한 저자들이 한 장, 한 장 지적 구조물을 쌓듯 화려하고 현학적으로 써 내려간 어휘들과 문체 속에서 내 짧은 배경지식을 겨우 겨우 연결시켜 가며 읽어 내려간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 속에서 얻은 지적 희열은 분명 뿌듯했지만, 다음날 다시 그 책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는 마음이 썩 가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 전에도 가벼운 에세이들을 읽곤 했지만 장기하의 에세이처럼 읽는 순간들이 마구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나의 사고의 흐름이 장기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어떤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보니 나와 작가의 마음속 공명 작용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좀 더 가볍게 생각해 본다. 내가 남다른 상상력이나 엄청난 감동을 쏟아내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명작을 써내는 위대한 거장이면 정말 좋겠지만, 달콤한 초콜릿처럼 한 순간이나마 글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으로 누군가의 독서 객체가 되어 줄 수 있는 맛난 글꾼이 되는 것도 나름 짜릿한 기쁨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가끔 내 소소한 글을 읽어 준 누군가가 보내오는 하트 표시에 찌릿찌릿해하는 일개 브런치 글꾼인 나는 그 이름 모를 이와의 공명의 순간에 기대어 이 숨 가쁜 글쓰기에 힘을 내본다.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