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나는 우아한 아침을 먹었다

by 연구하는 실천가

오늘은 수능날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한 시간 늦게 출근해도 된다.

그러니까 집에서 9시 15분에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처럼 매일 출근할 수 있다면 나는 항상 행복한 아침을 맞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근 10분 전까지.


항상 그렇듯이 오늘도 8시 10분에 엄마를 주간보호 센터 차에 태워 보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처럼 빈 속으로 허겁지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나는 항상 거르던 아침을 저 따스한 햇빛 아래 거실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먹을 것이다. 커피물이 끓는 소리에 맞춰 음악을 틀 것이다. 고소한 버터를 가득 녹인 프라이팬에 계란 묻힌 식빵을 살짝 굽어낼 것이다. 10여분이면 아침 준비는 끝날 것이고 나는 40여분 동안 아침 식사를 즐기면 될 것이다.


그런데 커피포트에 물을 받으려고 싱크대를 보니 컵과 접시가 몇 개 담겨 있다. 뭐 이 정도야. 일단 싱크대의 그릇들을 후딱 씻도록 하자. 깔끔하군. 이제 커피포트에 물을 받을까 하니, 싱크대 아래 거름망의 음식물 쓰레기가 상당히 거슬린다. 일단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자.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니, 거름망과 싱크대 배수구가 너무 지저분하다. 얼른 음식물 거름망과 배수구를 씻자. 씻는 김에 싱크대 주변도 함께 씻자. 주변에 틘 물을 행주로 닦고 행주도 빨아놓자. 이제 정말 개운하군. 드디어 커피 물을 올려본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가스 위에 올리고 키친타월로 프라이팬을 한 번 닦는다. 닦은 키친타월을 휴지통에 버리려고 보니 휴지통이 한가득이다. 휴지통에 넣을 쓰레기를 좀 더 주변에서 모아서 가득 채운 후 묶어서 현관문 입구에 내놓는다. 그리고 새 봉투를 휴지통에 씌운다. 이제 프라이팬에 버터를 올리고 계란을 묻힌 빵을 올려놓자. 이런, 그 순간 계란 한 방울이 그만 바닥에 떨어졌다. 물티슈로 바닥의 계란물을 닦다 보니 주변에 묵은 때가 좀 보여 물티슈 한 장을 더 뽑아 여기저기 좀 더 닦았다. 드디어 완성된 계란 토스트를 접시에 담고 햇살 가득한 창가로 가려는데, 그새 치워놓은 싱크대 주변이 또 어지럽다. 흩어져 있던 계란물 푼 그릇과 젓가락을 씻어놓고, 남은 계란과 소금, 빵을 제자리에 넣는다.


아니,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5분이라니.

아침을 우아하게 먹을 시간이 겨우 10분 남았다.

그냥 싱크대에 서서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고 출근할까?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나는 속으로 외치며 꿋꿋이 햇살이 비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빵과 커피를 번갈아 먹었다. 분명 내가 원했던 모습이긴 한데 이 씁쓸한 느낌적인 느낌은 무엇일까?


그 범인은 바로 집안일이란 도미노이다.

집안일이란 놈은 참 무서운 게 한 가지 일을 하려면 적어도 10가지는 연속적으로 하게 만든다.


그렇게 수능일 아침 늦은 출근 시간을 기뻐하며 우아하게 아침을 먹겠다는 나의 소박한 꿈은 이룬 듯, 이루지 않은 듯 그렇게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