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있다"
이 한마디가 가지는 의미가 엄마에게 그렇게 클 줄 알았다면 진작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가 그간 1년 이상 나를 힘들게 한 부분 중 하나가 나의 동생이자 본인의 아들인 J를 찾는 것이었다.
" J는 지금 어디 있노. 와 엄마 보러 안 오노."
이 한 마디가 엄마 입에서 떨어지면 나는 최소한 1시간 이상의 시달림을 받을 각오를 해야했다. 일단 이런 저런 궁색한 이유를 들며 동생이 엄마를 보러 오지 않는 못하는 이유를 20분 가량 설명한다.
" 요즘 너무 바빠서 못 온대."
" 너무 멀어서 자주 못 와."
" 내가 아무리 오라고 해도 걔는 말로만 알았다고 하고 안 오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 언젠가 오겠지."
처음에는 부드러웠던 나의 대응도 엄마의 등쌀에 점점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변해가고, 아울러 엄마의 아들에 대한 마음도 집착으로 변해간다. 결국 엄마는 동생에게 전화하라고 나를 압박하고 나는 마지못해 전화를 돌린다. J가 전화를 받든, 안 받든 일단 전화를 시작하면 5분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하게 하고 결국 J가 전화를 안 받게 되고 본인이 앞서 수차례 건 것은 다 잊어버리고, 왜 전화를 제대로 안 걸어주냐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 40분 이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항상 그렇듯이 그날도 가족의 안부를 연속적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Y는 언제 오노?"
"오고 있다."
"Y 아빠는 언제 오노?"
"오고 있다."
엄마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본들 자꾸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나는 이 상황을 피하고자 만들어낸 만능 대답, 바로 '오고 있다'라는 말을 어느 순간부터 쓰게 되었고, 이 말이 무척 효율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언제 오는지, 왜 늦는지 등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J는 왜 한 번도 안 오냐는 물음이 또 시작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오고 있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해 버리고 곧 후회했다.
'아, 이제 큰일 났다. J가 오고 있다고 했으니, 언제 오냐고 10분 간격으로 나를 들들 볶겠지?'
그런데, 엄마는 그 말을 듣더니 웬일로 조용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가 아들을 찾을 때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다.
"오고 있어."
그러면, 엄마는 편안한 얼굴로 '그래, 오면 내 방에 오라고 해라'하고 말하고는 끝이었다.
아들이 본인을 멀리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오고 있는 상태인 것이 엄마에게는 마음 편한 일인 것일까?
이때까지 구구절절 이런저런 이유를 대거나, 현실을 꼭 집어 말해 주었던 것이 오히려 엄마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날 이후 엄마는 아들을 자주 찾지 않는다. 가끔 아들이 왜 안 오냐고 물어보면, 나는 뻔뻔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말한다.
" 응, 오고 있어."
그런데, 요즘 다시 새로운 문제가 부상하였다.
"우리 엄마는 어디 있노."
" 왜 나는 엄마가 없노."
아들을 찾지 않는 대신 요즘 유독 본인의 엄마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또 구구절절 설명하였다.
"자식이 나이가 들면 부모는 더 나이가 많아지니까 먼저 돌아가시잖아.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는 지금 안 계시지."
그래도, 엄마는 물러서지 않는다.
"아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있더라. 내만 없더라."
" 왜 우리 엄마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먼저 갔노."
" 그럼, 나는 이제 혼자네. 아무도 없네."
또다시 시작된 무한 쳇바퀴 푸념에 시달리자니 또 만능 대답을 들이대는 수밖에 없다.
"우리 엄마 어디있노."
"응, 오고 있다."
엄마의 눈치를 슬쩍 보며 나는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아니다. 우리 엄마 없다."
'이런! 이건 만능 대답이 통하지 않는구나.'
결국 오늘도 수시로 엄마를 찾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가 결국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엄마가 할머닌데, 무슨 엄마를 찾노."
나의 냉정한 대답에 엄마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잠이 들었다.
무작정 엄마를 찾는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위로가 될 만능 대답은 무엇일지 새로운 과제가 또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