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복지포인트 나왔겠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렇듯이 올해도 남편은 나보다 먼저 나의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챙겼다. 그러면 나는 항상 그렇듯이 무신경하게 '아마, 그렇겠지?'할 뿐이다. 결국 이어지는 남편의 채근에 나는 귀찮은 마음을 누르고 복지몰 사이트에 로그인을 해서 얼른 남편에게 노트북을 넘겨줬다. 요즘 한창 자전거 타기에 빠져 있는 남편이 자전거 관련 물품을 서너 개 사고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살 거 없어?"
그러면 나는 항상 그렇듯이 '없는데?'하며 시큰둥하게 말하며 보던 휴대폰을 계속 보았다.
"그때 아이팟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거 한번 찾아봐."
나는 마지못해 남편이 넘겨준 노트북을 받아서 복지몰에서 그렇게 아이팟을 주문했다.
그제야,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 써. 잃어버리지 말고. 내가 주는 생일 선물이야. 내가 생일선물로 아이팟 사준다고 했지?"
그리고, 애꿎은 아들방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야, 아들, 넌 엄마 생일 선물도 안 사줬지? 아빠는 이렇게 아이팟 사줬는데 말이야."
나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수긍하다가 남편의 생색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곧 깨달았다.
내 복지포인트를 내 손으로 구매 버튼을 누른 이 상황이 선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래, 분명 한 달 전쯤인 나의 생일날 저녁에 남편은 생일선물로 무엇을 원하냐고 새삼 물었었다.
"응? 지금 준비해서 서프라이즈 해야 하는 타이밍 아닌가?"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발끈하는 척했다. 그래도 사준다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한참을 생각해서 '에어 팟'이라고 말했고, 남편은 알겠다고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이런 식으로 그 일이 이루어질 줄이야.
"아니, 내가 내 돈으로 산 건데 왜 선물이야?"
나는 사실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따져 물어 다.
남편은 말했다.
"선물 맞지. 내가 말 안 했으면 샀겠어? 안 샀겠어? 계속 그 지지직거리는 고장 난 이어폰 줄 이리저리 흔들어가며 계속 사용했겠지?"
"그건 그래."
" 그럼 내가 사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선물이지."
부부간의 선물이라는 게 사실 누구의 돈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차피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인 상황이니까. 서로의 필요를 먼저 알아주고 얼른 사라고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렇다. 뻔한 20년 차 부부의 권태로움을 이겨내는 데 있어서 단조로운 멜로디의 작은 변주처럼 삶의 쉼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