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남편과 아들이 함께 집을 비우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신기하게도 집은 백색의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분명 사람 두 명이 빠져나간 것뿐이고 복잡한 가구들과 물건들은 그대로 가득 차 있는데도 왜 집안의 모습은 색깔도 구조도 밋밋해지는 걸까?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도 집안의 고요함은 여전히 가득하다.
'우리 없이 할머니랑 괜찮겠냐'는 아들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는 '괜찮아. 좀 허전할 뿐이지'라고 아쉬운 척했지만 '사실 너희들이 없으면 더 편하거든'하는 속말은 꿀꺽 삼킨 채였다.
빈 공간에서의 첫날 저녁, 엄마가 잠든 8시부터 늦은 밤까지 나는 고요 속 자유를 맘껏 누렸다. 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아도 되니 설거지 거리도 그릇 몇 개에 불과하고 뭔가 과일을 깎거나, 커피를 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사라지자 내 몸과 마음은 무척 가볍기만 했다. 그러자 그동안 가득 밀린 글도 쓰고, 휴대폰도 마구 보며 뒹굴거려도 보너스 같은 시간은 충분히 넘쳐났다.
물론 안 좋은 순간도 있었다. 퇴근 시간 직후 1시간이 그랬다.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서 모셔와 빈 집으로 딱 들어올 때 느껴지는 적막감이 그것이다. 그 전에도 빈 집에 들어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지만 그때는 몇 시간 뒤 다른 식구들이 들어올 예정이었기에 집은 빈 공간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런 적막감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떠난 첫날, 집에 들어올 때의 느낌은 아주 달랐다. 지금도 아무도 없고 이후로도 며칠간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팽팽한 고요함이 가득한 그런 적막감이었다.
둘째 날이 되자 집의 적막감은 한결 나아졌다. 그러니까 둘째 날은 집을 비운 식구들이 덜 보고 싶고, 좀 더 마음이 편안했다. 엄마도 일찍 잠을 자 주어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둘째 날의 자유시간은 그렇게 한껏 달콤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는 여전히 빈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금방 깨달았다. 더 이상 이곳이 썰렁한 빈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몇 시간 뒤 들이닥칠 식구들의 온기가 벌써 먼저 도착해 있었다. 뭔가 모를 분주한 공기들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삐삐삐'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그들은 돌아왔다.
"커피 한 잔 마시자."
들어오자마자, 예상되었던 남편의 음성이 나에게 들러붙었다. 커피를 들고 오는 내 눈앞에는 여기저기 던져진 아들의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순식간에 소리와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내 몸과 집안의 무게감에 어제의 텅 빈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슬쩍 물어보았다.
"너희들 또 언제 올라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