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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l 23. 2021

슬프지 않아서 슬프다

  차량에서 내리자,  익숙한  낯선 여자가  손을 끌었다.  좁은 건물의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어떤 집은 낯선  익숙한 냄새와 공간이 펼쳐졌다.    여자가 이끄는 대로 현관 입구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제야 나는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던 말을 겨우꺼냈.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요?"

내 말을 듣자 여자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덤덤하고 빠르게 말하였다.

"사람이 몇 살까지 살까요?  백 살이 넘어 사는 사람은 있을까요?"

"그럼,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나요? 언제 돌아가셨나요?"

"네. 아주 오래전에."

"그럼, 난 아무도 없네요?"

"왜 아무도 없어요. 딸과 아들, 손자랑 여기 같이 살잖아요. "

"그들은 어디 있나요?"

"곧 와요. "

“나는 몇 살에 죽나요?”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마치 준비된 질문처럼 여자는 툭툭 던지듯 무미건조하게 잘도 대답하였다.

부모를 방금 잃은 듯 넋이 나간 나를 침대에 앉혀 놓은채 그 여자는 잠시 방을 나갔다가 음료수를 들고 다시 왔다.  나는 또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딸이에요. "


 '나에게 딸이 있었나? 주름 가득한 눈매에 탄력 없는 얼굴을 가진, 나이가 50 되었을 법한  여자가  딸이라고?'

나는 내 딸이라는 이상한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당신, 내 딸 아니에요. 그리고 여기 우리 집 아니에요. 나 우리집에 갈래요."

내 말에 여자는 한숨을 내뱉듯이 훅 쉬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화를 꾹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집이에요. 조금 있다 저녁 먹읍시다. 그때까지 좀 쉬세요."

그리고 그녀는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이상한 곳에 나를 데려와 놓고는 자기가 내 딸이라고 하고, 우리 부모, 형제는 보이지도 않고.'

나는 속에서 뜨거운 설움이, 그리고 불안감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 같다가도, 이 여자가 왠지 나를 지켜줄 것만 같기도 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 마음은 오락가락하였다.



 이제 그렇게 집착하던 딸도 알지 못한다.  매일 같이 보고 싶다고 그리워하고 노여워하던 아들도 거의 잊었다. 그저 어린 시절 자신을 업어주고 안아주던 부모만이 눈에 선하고 보고프다. 그렇게 이 낯선 별에 홀로 떨어진 외로운 지구인이 되어버린 엄마는 더 이상 무엇이 슬픈지 알지 못해 슬프지 않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이제는 매일 떠나버리고 싶은 낯선 외계인이 되어버린 나도 더 이상 슬플 것이 없어 슬프지 않다. 고로 우리는 모두 슬프지 않다. 이게 해피앤딩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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