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에서 내리자, 왠 익숙한 듯 낯선 여자가 내 손을 끌었다. 좁은 건물의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어떤 집은 낯선 듯 익숙한 냄새와 공간이 펼쳐졌다. 또 그 여자가 이끄는 대로 현관 입구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제야 나는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던 말을 겨우꺼냈다.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요?"
내 말을 듣자 여자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덤덤하고 빠르게 말하였다.
"사람이 몇 살까지 살까요? 백 살이 넘어 사는 사람은 있을까요?"
"그럼,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나요? 언제 돌아가셨나요?"
"네. 아주 오래전에."
"그럼, 난 아무도 없네요?"
"왜 아무도 없어요. 딸과 아들, 손자랑 여기 같이 살잖아요. "
"그들은 어디 있나요?"
"곧 와요. "
“나는 몇 살에 죽나요?”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마치 준비된 질문처럼 여자는 툭툭 던지듯 무미건조하게 잘도 대답하였다.
부모를 방금 잃은 듯 넋이 나간 나를 침대에 앉혀 놓은채 그 여자는 잠시 방을 나갔다가 음료수를 들고 다시 왔다. 나는 또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딸이에요. "
'나에게 딸이 있었나? 주름 가득한 눈매에 탄력 없는 얼굴을 가진, 나이가 50은 되었을 법한 이 여자가 내 딸이라고?'
나는 내 딸이라는 이상한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당신, 내 딸 아니에요. 그리고 여기 우리 집 아니에요. 나 우리집에 갈래요."
내 말에 여자는 한숨을 내뱉듯이 훅 쉬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화를 꾹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집이에요. 조금 있다 저녁 먹읍시다. 그때까지 좀 쉬세요."
그리고 그녀는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이상한 곳에 나를 데려와 놓고는 자기가 내 딸이라고 하고, 우리 부모, 형제는 보이지도 않고.'
나는 속에서 뜨거운 설움이, 그리고 불안감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 같다가도, 이 여자가 왠지 나를 지켜줄 것만 같기도 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 마음은 오락가락하였다.
이제 그렇게 집착하던 딸도 알지 못한다. 매일 같이 보고 싶다고 그리워하고 노여워하던 아들도 거의 잊었다. 그저 어린 시절 자신을 업어주고 안아주던 부모만이 눈에 선하고 보고프다. 그렇게 이 낯선 별에 홀로 떨어진 외로운 지구인이 되어버린 엄마는 더 이상 무엇이 슬픈지 알지 못해 슬프지 않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이제는 매일 떠나버리고 싶은 낯선 외계인이 되어버린 나도 더 이상 슬플 것이 없어 슬프지 않다. 고로 우리는 모두 슬프지 않다. 이게 해피앤딩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