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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03. 2021

나는 별게 다 감사하다

   "화장실 가고 싶다."

 새벽에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는 항상 나를 힘들게 한다.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마뜩잖은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몇 번의 소리에 참지 못하고 눈을 뜨니 아침과 새벽 그 사이쯤 되는 오전 6시 30분!

‘30분은    있었는데 하는 마음에 ''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그리고 엄마를 일으켜 화장실로 데려가 앉힌다.  화장실 입구에 서서 꾸벅꾸벅 졸다가 엄마가 오래 리는  같아 거실 소파에 살짝 눕자마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이 자꾸 나온다."

  엄마는 또 비데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고, 그렇게 올라오는 물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나는 비데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차렸다.


 '아, 이건 비상사태다.'

  잠이  달아났다.  엄마가 종종 화장실에서 실수를 하지만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당장 엄마 옷을 벗기고 욕조 의자에 앉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엄마 목욕을 시키고 방으로 모셔와 옷을 입혔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오전 7시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방금  엄마가 일찍 나의 잠을 깨울 때는 분명 온몸의 피로와 짜증이  밀려왔는데, 지금은 오히려 기분이 가뿐하다.

 얼마나 좋은가? 딱 출근 준비하기 좋은 시간 아닌가?  무려 엄마는 다 씻었고 옷까지 입고 있으니, 나의 출근 준비 시간은 여유롭기까지 하다.  만약 오늘의 이 비상사태가 지금 발생했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다.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울상에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가? 또 이 일이 새벽 3,4시쯤 발생했다면?  그날의 잠을 다 놓쳐 버려 하루가 비몽사몽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응가를 하기 위해 나를 깨운 시간이 이렇게 절묘하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치매는 간병인에게 분명 고통과 죄책감을 심어주지만,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에 감사하게도 한다.


   마음이 아기가 되어버린 예민한 큰 아기인 엄마와 함께 해야 하는 출근 시간은 상당히 디테일한 루틴이 필요하다. 엄마를 너무 빨리 깨워 출근을 준비하면 3분 간격으로 나를 부르는 엄마 때문에 온 집안 식구를 다 깨워버리고 나의 출근 준비도 엉망이 되며, 엄마의 기분 조절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에서 딱 20분 전, 7시 45분에 깨운다.  이 시간부터 문밖을 나가는 8시 5분까지 꼼꼼한 루틴으로 짜서 움직인다.


  일단 나는 7 40분이 되면 나의 준비를 마치고, 엄마의 준비물을 챙긴다.  휠체어 펼쳐놓기, 아침 약과 마스크를 식탁에 올려둔다. 그리고  7 45분이 되면 엄마를 깨운다.  그리고 화장실에 데려가   보고 세수를 하게 한다. 7 50분에 옷을 입히고 아침으로 가벼운 유동식을 먹인다.  7 55분에 아침 약과 간식을 먹인다.  8시가 되면  물건을 챙겨서  앞에 두고 어지럽혀진 주변을 빠르게 정리한다.  8 3분이 되면 엄마를 부축해서 현관문  휠체어에 앉히고 신발을 신긴다. 8 5분에 엘리베이터를 누른다.  8 10분에 차량에 엄마를 태워 보내면 . 이렇게  단위로 움직이면 엄마는  문제없이 얌전히  말을 따른다. 물론 간혹 변수가 발생한다.  주간보호센터를 가지 않겠다고 하거나,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경우 대부분 2~3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라 출근 시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간혹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하거나,   일을 보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면 일단 센터 차량에 전화를 해서 차량을 보내고 문제를 해결한 , 휠체어에 태워 직접 주간보호센터로 향한다.  이런 날은 나는 결국 지각을 해야 한다.  


  요즘은 엄마가 감사하게도 이런 돌발 변수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만들어도 오늘처럼 새벽에 문제를 발생시켜서 나의 출근 시간을 지켜준다. 감사하게도.


   감사는  별거인  같다.  아닌 일상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이런 별난 일에 감사할 때 감사가 절로 올라온다. 당연한 삶을 당연하게 사는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게 살게 해주는 엄마를 보며,  힘든 현실이 가끔은 철없는 나를 철들게 하려는  엄마의 고도의 작전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렇 감사는 부족한 사람에게 찾아와 주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뭐든 넘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당연하니 주어진 것에 감사는커녕 조금만 부족해져도 불만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부족한 나의 모습과 현실을 항상 달을 수밖에 없는 나는 가끔 생기는 별 일들에 감사. 그래도 가끔은 나도 남들처럼  당연하게 갖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와 눈이 종종 시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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