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입소 하루 전날
"죄송한데, 더 이상 어르신을 못 모시겠어요. 더 좋은 곳을 알아보셔야겠어요."
이름도 '더 좋은'인 이곳(주간보호센터)에서 엄마를 ‘더 좋은 곳’으로 모셔라는 전화가 왔다. 나도 엄마의 힘듦을 알기에 언젠가 올 것만 같았던 연락이었다. 그래서 처음 전화를 받을 때는 담담했지만,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마음에 쿵하고 내려앉는 돌덩이가 제법 무겁고 아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세 번째로 옮긴 곳이 이 주간보호센터였다. 이제 또 다른 주간보호센터로 옮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은밀하게 속으로만 해 오던 계산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상황 : 가족을 수시로 찾지만 누가 가족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딸이라 해도 아니라고 우기기 일쑤이고, 대략 나를 비롯하여 자신을 돌보는 모든 여자들이 때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고 때로는 자신의 딸이고 가끔 자신의 엄마라 생각한다. 따라서 누가 돌보든 엄마에게는 가족과 따로 사는 슬픔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엄마는 자신의 집에 와서도 자신의 집이 아니라 한다. 따라서 요양원에 가서도 낯선 곳에 대한 추가적인 슬픔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센터와 집을 오가는 것이 엄마에게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내가 집에서 챙겨주는 음식이나 돌봄이 특별한 것이 없고 그저 약 먹이고 재우는 것이 거의 다이다. 오히려 요양원이 좀 더 체계적인 돌봄이 될 수 있다.
나의 상황 : 아침마다 엄마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을 챙겨 먹이느라 지각 직전의 출근과 피로도의 무게는 상당하다. 저녁마다 엄마를 재우느라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휴식은 물 건너가기 일쑤이고 새벽에도 끊이지 않는 엄마의 부름에 나의 잠은 대체로 반토막이 난다. 또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벤트성 나들이나 나의 개인 일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에 대한 나의 계산에 따르면, 엄마가 느끼는 행복은 플러스, 마이너스가 같아서 0이 되고, 현재 나의 자유와 수면시간은 최소값에 수렴한다. 또한, 남편은 아내와 각방을 쓴 지 일 년이 넘어 이제는 따로 자는 게 더 익숙한 나눗셈의 관계가 되었다. 아들은 나의 요청에 의해 수시로 할머니의 돌봄을 분담하면서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음수로 갖고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당연히 남는 계산법이다. 하지만, 나의 계산 꼼수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미지항이 있으니, 그것은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분명 느낄 혈육만의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이다. 이것이 가지는 값의 크기를 현재 잴 수가 없는 것이 이 계산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미지항의 값을 해결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글을 써서 요양원의 요양보호사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그러면, 적어도 미지항의 값이 0보다는 조금 큰 양수 값이 되리라는 꼼수적인 근거로 나는 기어코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저희 어머니를 돌봐주시게 될 요양보호사님께,
한 명의 혈육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여러 어르신을 돌보아주시는 것에 너무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죄송하게도 이렇게 글로 부탁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희 어머니의 현재 신체적, 정서적 상태와 습관을 알려드려서 어머니가 좀 더 빨리 그곳에서 잘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첫째, 저희 어머니는 수시로 특히, 자다가 간식을 찾으십니다. 그럴 때에는 제가 보내드린 이 과자들과 음료를 드실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째, 저희 어머니는 수시로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을 '선생님', 또는 '00 엄마'식으로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찾거나,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누구 어디 있냐’고 하면 곧 온다고 해주시고, 요구사항은 알겠다고 둘러대시거나 대충 들어주시면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실 겁니다. (예를 들어, 결혼 언제 시켜주냐고 하면 곧 한다 하시고, 리모컨 달라하면 충전 중이라 하시고, 가방 달라하시면 비슷한 거라도 쥐어주세요.)
셋째, 저희 어머니는 화장실을 자주 가려하십니다. 특히 자다가 깨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그럴 때 화장실 입구까지 부축해서 데려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걷기가 점차 안되고 계십니다. 보통은 휠체어를 타지만 최근에 구입한 워커를 조금씩 익숙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전문가이신 요양보호사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을 알지만, 집에서 이런 패턴으로 생활하신 저희 어머니 상황을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낯선 곳에서 좀 더 불안하지 않고 즐겁게 적응하실까 하여 못난 자식이나마 이런 부탁 말씀을 드려봅니다.
— 봉사와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되는 요양보호사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000의 딸 *** 드림 —
** 위와 같이 속이 훤히 보이는 간지러운 편지를 입소 서류와 함께 챙겨 가방에 넣고 오늘밤 나는 오지 않을 잠을 좀 일찍 청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