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 때 나는 사실 조금밖에 슬프지 않았다. 후련한 쪽이 조금 더 큰 감정이었다. 엄마에게도 좋은 결정이라는 내 말에 아들은 우리를 위한 결정이라는 말로 내 마음을 따끔하게 했다. 어쨋든 나는 엄마를 입소시킨 날 밤에 엄마 걱정에 잠 못 이루기는커녕 큰 대자로 누워 얼마나 깊게 잠을 잘 잤던가. 더 이상 새벽마다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수차례 몸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기쁨 속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말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는 매일 면회를 가기로 결심했고 입소 다음날 면회를 갔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라 차가 엄청 밀렸고 30분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엄마는 비대면 유리 창벽을 문지르면서 손을 잡아달라고 했고 그 순간 나는 조금 울컥했었다.
"엄마, 미안. 내 손이 좀 더러워서 그래. 다음에 꼭 잡아줄게."
내가 누구냐고 묻는 엄마에게 나는 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작은 소리로 '예쁘다'라고 중얼거렸다. 엄마는 시력이 나빠져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니 내 얼굴이 잘 보일 리 없다. 또 내가 기억하기에 엄마가 내게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예쁘다'는 그 낯선 말에 묘한 감정이 교차되며 두 번째 울컥이 찾아왔지만 나의 냉정함으로 잘 극복했다.
그래서 난 이제 정말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10년 감옥살이를 한 죄수가 감옥에서 벗어난 느낌이 이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난 정말 좋은 딸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내게 온 벌인지 몰라도 자유의 유효기간은 너무 짧았다. 집으로 돌아온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혈변을 본다고, 내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명절 첫 연휴 아침 응급실에서 만난 엄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링거와 수혈 줄, 소변줄을 매달고,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야 했다. 치매인 엄마가 그런 상황을 납득할 리가 없었다.
손이 아프다고 링거를 빼라고 소리를 지르고, 물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화장실에 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위나 장의 출혈 가능성이 높고 다음날 내시경 검사도 해야 해서 금식과 입원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는 말했다. 그리고 엄마의 현재 상태상 다인실은 불가해서 1인실로 가야 했다.
거의 처음 맞이하는 자유로운 연휴였다. 저녁 외출, 근교 외곽 나들이 등, 기대와 설렘이 정말 컸다.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 이게 더 컸다. (나는 나쁜 딸이니까)
그래서, 일단 간병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전화를 돌렸지만 명절이라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겨우 한 명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토요일) 점심때 오기로 했다. 명절 첫 연휴 밤만 병원에서 엄마와 보내면 되었다. 엄마는 병실에 와서는 조금 안정을 보였다. 밤에 잠도 깊게 자서 나도 잠을 좀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간병인이 왔고 나는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떠난 후 엄마의 소란이 있었고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더 못 하겠다’고 간병인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심기를 그런대로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외에는 별로 없다는 게 문제이다. 엄마의 요구와 편의를 최대한 맞춰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나이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엄마 다리 근력이 빠질까 봐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화장실까지 데려가서 볼 일을 보게 하고 데려오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다.
그렇게 나의 명절 간병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렇게 연휴를 보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첫 간병인 실패 후 간병인 구하기 앱을 깔고 엄마의 상황을 너무 구구절절하게 적은 것이 문제인지 간병인이 더 이상 구해지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로 1인실에서의 간병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는 점이다. 내가 한 눈 판 사이에 엄마가 링거 바늘을 뽑거나, 밤잠을 자지 않고 30분마다 화장실을 데려가 달라고 한다거나, 낙상방지용 난간대를 올려놓아도 엄마가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이 가끔 발생하는 점, 금식 중인 엄마가 밥을 달라고 한 시간 내내 떼를 쓰는 점 등 한 10가지의 어려움을 빼고 나면 말이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종이들을 책상 가득 흩어놓아도, 타다닥 거리는 노트북 자판 소리가 울려 퍼져도, 컵라면이나 과자를 사 와서 후루룩, 쩝쩝거리며 먹어도 눈치가 안 보인다. 드러누워서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봐도 된다. tv나 음악 소리도 원하는 만큼 볼륨을 올릴 수 있다. 생리현상이 생기면 마음 편히 해소할 수 있다. 간호사가 들어올 때 빼고는 마스크를 벗고 있어도 된다. 그래서, 나에게 1인 병실료 20만 원과 명절 간병비 20만 원은 대체 가능한 재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왕 하는 거 호텔 같은 병실에서 마음 편히 간병을 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나의 연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