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Mar 27. 2022

엄마가 그리운 날

1. 아흔의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온다. 정정하고 밝은 모습.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가 보고 싶다. 며칠만 집에 모셔 와서 옆에 같이 누워 뒹굴거리고 싶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먹이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드리고 싶다.  이틀도 안 되어 힘들다며 나는 징징거리겠지만. 코로나만 없다면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는 집에 모셔와 옆에 잠시 같이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 함께 살 자신은 없으면서 함께 누워 있고 싶은 욕심에 오늘도 허공을 향해 멍하니 눈 몇 번 꿈벅거리고는 다시 휴대폰에 눈을 박고는 잠 오지 않는 적막한 밤을 지새워 본다.


2.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던 음악 앱이 오늘 월 결제되었다고 문자 메시지가 떴다. 엄마가 좋아하는 블루투스 스피커 음악을 듣기 위한 전용 앱이다. 이제 이 블루투스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엄마의 손때 가득 묻은 채로 엄마의 빈 방을 홀로 지키고 있다. 매달 7800원씩 나가는 돈이 아까워 이 앱의 음악 정기 구매를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음악 앱은 구매 버튼은 찾기 쉬운데 취소 버튼은 이렇게 꽁꽁 숨겨놓는 걸까? 그 속내가 훤히 보여서 화가 난다. 겨우 찾아낸 구매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갑자기 웬 창이 뜬다. 구매 취소를 하기 전에 선물을 받으란다. 석 달간 매월 990원으로 음악을 듣고 넉 달째부터 원래 금액인 7800원으로 복구되는 선물이란다. 이런 눈속임에 흔들릴 내가 아니지 하며 구매 취소 버튼을 누르기 직전 내 둘째 손가락이 조금 주춤한다. 혹시 엄마가 다시 이 블루투스를 사용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금액도 적은데 이 앱을 좀 더 남겨둘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눈속임에 눈감아 주기로 했다. 선물 받기 버튼을 누르자 이번 달 7800원이 환불되고 990원이 결제되었다. 당분간 이 블루투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때까지 코로나가 끝나고 엄마가 집에 잠시라도 방문할 수 있다면 나는 이 블루투스를 틀고 엄마 옆에 누워야지.


3. 예전에 엄마가 신체적으로 건강할 때, 집에 뭘 고치러 오는 사람이나 가게에 엄마와 물건을 사러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 속도 모르고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아휴, 친정어머니와 같이 사셔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연세에 비해 너무 정정하시네요. 부러워요."

그러면 나는 그들의 따뜻한 말에 이렇게 뾰족하게 대꾸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렇게 부럽고 좋으면 지들은  노부모를 모시지 않고 들끼리 자유롭게 사는 건데. 자기들은 부모 건강할 때는 건강하다고 따로 살고, 편찮을 때는 편찮다고 병원에 따로 모시면서.  지금에서야 효자, 효녀인 척하는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짜증이 났다. 당시 엄마의 괴팍함은 나를 정말  막히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말을 이해한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이 주는 의미,  포근함과 보드라움을. 나도 이제 건강한 노인들과  자식들을 보면 때의 그들처럼 부러운 눈이 된다. 나도 모르게 건강한 부모님이 곁에 계셔서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간질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간병기(feat. 1인 병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