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14. 2021

엄지왕자의 나라를 아세요?

  넓고 깊은 푸른 숲이 끝나는 곳, 마른 흙이 폴폴 날리고 거친 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작은 땅을 가진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 황무지 땅을 일구며 살아온 백성들은 힘들었지만 노력한 만큼의 곡식을 거두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나라의 왕과 왕비는 척박하나 오랫동안 살아온 이 땅을 사랑하였고, 이곳의 부지런한 백성들을 또한 사랑하였습니다.  


  어느  왕과 왕비는 저녁 달빛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푸른 별빛이 유난히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시들어 가는 작은   송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꽃을 보기 힘든  황무지의 나라에서 꽃을 발견한 왕과 왕비는 너무나 기뻐서 가지고 있던  병의 물을  아래에다 모두 부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꽃잎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안에서 얇고 노란 날개를 가진 조그마한 요정이 나왔습니다.  

 "왕과 왕비님, 저는 이 황무지의 요정입니다. 저에게 소중한 물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왕과 왕비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요. 원하시는 소원이 있으신가요?"

요정의 등장에 깜짝 놀란 왕과 왕비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이 생각한 후 말했습니다.

 "요정님. 우리 백성들이 이 땅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왕이 앞으로 나타나길 원합니다. "

왕과 왕비의 말에 요정은 대답했습니다.

"왕비님은 곧 아기를 가지실 것입니다. 그 아기는 지혜의 귀를 가지고 있어 숨어있는 소리도 다 들을 것입니다. 다만 남과 다른 능력을 가졌기에 남과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왕과 왕비는 " 지혜로운 아기라면 그것을 이겨낼 것입니다. "라고 입을 모아 말하였습니다.


  얼마 후 왕비는 남자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가 너무나 작아서 엄지 손가락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왕과 왕비는 특별히 놀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아기를 그때부터 엄지왕자라 불렀습니다.  엄지왕자는 별 탈 없이 잘 자랐지만 키는 어린아이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습니다. 왕자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라 전체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농사짓기를 포기하고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왕과 왕비는 고민 끝에 요정을 찾아갔습니다. 요정은 왕과 왕비에게 1년간 여행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왕과 왕비는 다음날 바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습니다.


  왕과 왕비가 갑자기 나라를 떠나자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때 왕의 동생이 나서서 말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새로운 왕을 뽑아야 하오. 지금의 왕자는 너무 작아서 왕관을 쓸 수조차 없으니 왕이 될 수 없소. "

 왕의 동생이 말하는 중에도 엄지왕자는 메말라 가는 들판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왕의 동생의 말이 끝나는 순간 왕자의 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왕자는 자신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황금색 망토를 뜯어 머리띠처럼 머리를 질끈 묶었습니다. 순간 머리띠는 작은 왕관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그리고 왕자는 곧장 궁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왕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고 왕자는 푸른 별빛이 비추는  아래에 피어있는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의 땅을 왕자는 자신의 칼로 파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팠지만 왕자의 작은 손에 쥐어진 조그마한 칼로는 깊이 파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왕의 동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보시오. 왕자의 몸은 너무 작아서 땅을 파기도 어렵소. 우리에게는 힘이 센 왕이 필요하오."

그 순간 한 소년이 앞에 나섰습니다.

"저는 왕자님의 말을 돌보는 마구간지기입니다. 저에게는 큰 삽이 있습니다.  왕자님은 항상 간식이 생기면 저에게 나누어 주시며 저를 친구로 대하셨지요. 제가 왕자님과 함께 해 보겠습니다."

소년은 마구간을 청소할 때 쓰는 큰 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삽으로 왕자와 함께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삽 덕분에 땅은 점차 깊이 파였지만, 어느 순간 단단한 돌에 가로막혀 더 이상 팔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덩치가 아주 큰 사내가 천둥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나는 궁궐 문지기요. 왕자님은 궁을 드나들 때마다 나에게 항상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었소. 내가 들고 있는 이 날카로운 창으로 단단한 돌을 부수어 보겠소."

 문지기는 궁궐을 지킬 때 드는 커다란 창으로 단단한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순간, 돌은 쿵 소리를 내며 여러 조각이 났습니다.  세 사람의 힘으로 땅은 계속 깊게 파여 나갔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파인 흙 아래에서 맑은 물이 퐁퐁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많은 물이 고여 작은 연못이 생겨났습니다.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모두 힘을 모아 함께 흙을 파서 결국 커다란 연못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황무지의 땅은 커다란 연못의 물로 힘들이지 않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이웃의 숲나라 사신이 엄지왕자를 찾아왔습니다.

"왕자님, 왕자님이 커다란 호수를 만든 이후에 숲나라의 강물이 점점 말라가고 있습니다. 저희 여왕님께서는 당장 호수를 없애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어 공격하겠다고 하십니다. "

크고 강한 나라인 숲나라 사신의 말에 신하들과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왕의 동생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 어린아이처럼 작은 왕자가 나라를 다스리니 숲의 나라가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것이오. 우리도 몸집이 크고 힘이  왕을 세워 숲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오.”

곰곰이 생각하던 엄지왕자는 바람처럼 가볍게 자신의 말에 올라타고는 신하들과 병사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이 땅은 너무나 척박하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곳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행복한 백성들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땅을 지킵시다.  숲의 나라는 큰 나라지만 한 번도 우리를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 싸우기 전에 그들의 이유를 내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들이 이 땅과 우리 백성을 잘 지켜주세요. "

왕자는 홀로 말을 타고 숲의 나라로 떠났습니다.


  숲의 나라로 가는 강 입구에는 오리 떼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 오리야, 너는 왜 다른 오리들과 함께 놀지 않고 울고 있니?"

" 저는 다른 오리들처럼 작고 날렵하지 않고 둔하고  을 가져 헤엄도   쳐요. 다른 오리들처럼 예쁜 노란색 깃털도 없어요. 저는  다른 오리와 다를까요?"

 그때 엄지왕자의 귀에는 멀리서 날아오는 백조들의 날갯짓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너는 저 오리들과 조금 다르게 생겼구나. 하지만 너는 커다란 날개를 가져서 누구보다 힘차게 날 수 있고 너의 흰색 깃털은 물빛에 비쳐서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그들과 다른 너만이 할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야. 너의 큰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갈 준비를 해 보렴. "

말을 마친 엄지 왕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숲의 나라 여왕이 사는 성 입구에 다다랐을 때, 엄지왕자는 성문 앞에 쓰러진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녀의 주위에는 타버린 성냥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왕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과 음식을 소녀에게 먹였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곧 정신을 차렸습니다.

소녀는 슬퍼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머니도 형제도 없어요. 오로지 화만 내시는 아버지뿐이지요. 저를 사랑해주시던 할머니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성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데, 이제 성냥도 팔리지 않아요. 저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

 왕자는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의 말을 들으니, 정말 당신은 불행한 거 같아요. 하지만 당신은 몸이 건강하고 말을 잘하며, 생각도 깊군요. 지금 당신의 일이 당신에게 맞지 않다면 당신에게 꼭 맞는 일이 있을 거예요. 당신의 멋진 모습을 당신이 깨닫는 순간 분명 당신은 행복해질 거예요. "

왕자는 소녀를 떠나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지왕자를 만난 숲의 여왕은 아이와 같은 왕자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 작은 왕자야. 너희가 만든 호수 때문에 우리 숲의 큰 강물이 말라버렸어. 당장 너희 나라의 호수를 흙으로 덮지 않는다면 우리의 무서운 군대가 쳐들어 갈 것이야."

 무례한 여왕의 말에도 왕자는 침착하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왕자의 귀에는 숲 속 나무와 동물들이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왕자는 숲의 여왕에게 말했습니다.

 " 여왕님. 숲의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위쪽에 있습니다. 저희가 호수를 만들었다고 숲의 강이 마를 수는 없습니다. 숲의 강 위쪽을 살펴보면 강물이 마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숲의 여왕은 왕자의 정중하고 친절한 말투에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말에 따라  숲의 강 위로 함께 가 보았습니다. 강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마구 베어내느라 숲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 여러분, 왜 이렇게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나요?"

 누군가 대답했습니다..

 " 우리 집이 옆집보다 너무 작아요.  이 나무들을 잘라서 더 큰 집을 지을 겁니다. "

또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 옆 집이 큰 울타리를 세워 넓은 마당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이 나무들로 더 큰 울타리를 만들어 더 큰 정원을 가질 겁니다. "

사실 여왕도 자신의 궁궐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군사들을 시켜 나무를 베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말했습니다.

 " 숲의 나라는 많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좋은 땅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를 베어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마르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집과 마당은 충분히 크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왕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왕자의 옆에는 성냥을 팔던 그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소녀는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왕자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습니다. 저는 제가 사람들을 도와줄 때 무척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도울 일이 떠올랐고요."

소녀는 나무를 베는 사람들과 숲의 여왕에게 소리쳐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여왕님. 숲의 나라는 저절로 많은 열매와 꽃과 나무가 자라는 풍요로운 곳이었어요. 보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 행복했지요. 그런데 그 소중함을 언젠가부터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이 아름다운 나무들을 잘라 울타리를 쳐서 자신만의 열매와 꽃으로 삼기 시작했지요. 여러분 주변을 둘러보세요. 이제 함께 보던 꽃과 열매는 거의 없답니다. 항상 들리던 새소리도 사라졌어요.  나 홀로 울타리 안에서 집 안의 꽃과 열매를 보고 먹을 뿐이죠. 이제 물도 마르니 이것도 곧 시들어버리겠죠. 자기만의 멋진 집 안에서 모두 예전보다 정말 행복하신가요?"

사람들은 그제야 아름답던 숲이 파헤쳐지고 높은 울타리로 막혀버린 답답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말라버린 강 주변에 그 많던 동물, 꽃과 나무도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모두 함께 뛰놀던 커다란 숲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순간 멀리서 한 무리의 백조가 보였습니다. 그 무리 속에는 얼마 전 왕자가 보았던 작은 오리도 하얀 깃털을 퍼덕이는 멋진 백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메마른 강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물, 열매, 땅이 부족해진 것은 이웃 탓이 아닌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자기 집 울타리를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베었던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왕자는 다가오는 비구름 소리를 들었습니다.

 " 여러분 곧 비가 올 것입니다. 모두 힘을 내어 나무를 심읍시다. 그러면 나무는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가지 않게 하고 비는 맑은 강물이 되어 예전처럼 풍성하게 흐를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다리면 다시 꽃과 열매, 새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말 얼마 후 왕자의 말처럼 빗방울이 듣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숲의 나무들이 흙을 잡아주며 빗물을 계곡 아래로 부드럽게 흘려보내 주었습니다.  빗물은 계곡을 거쳐 강으로 점차 모여들었습니다. 얼마 뒤 비가 그치자, 풍성해진 강물로 얼마 전 날아갔던 백조 무리가 다시 날아왔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아름다운 숲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많은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군요. 너무 많이 가졌기에 나무와 물이 소중한 줄 몰랐어요. 그저 남 보기에 더 멋져 보이려 신경 쓸 뿐이었어요. 이제 나의 큰 궁궐도 백성들과 함께 해야겠어요. 나 혼자 쓰기엔 나의 궁궐이 너무 크고 쓸모없으니까요."

아까와 달리 숲의 여왕의 말에는 엄지왕자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 여왕님과 백성들이 행복해 보이니 되었습니다. 언제 우리나라에 와 주시면 거친 흙 속에서도 작은 나무와 열매를 가꾸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왕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왕자의 작은 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1년 뒤 왕과 왕비는 다시 궁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오는 길에 황무지의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커다란 연못과 주변의 수많은 꽃과 나무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궁의 마당에 들어서자,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이곳은 어떤 나라이니?"

왕과 왕비를 알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황무지였지만 지금은 물과 꽃과 나무가 아름다운 나라예요. 또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뭐든지 나누는 백성들의 나라이죠. 그리고, 저희들의 친구인 엄지왕자님도 있어요. 보세요."

아이들이 가리킨 곳에서 엄지왕자는 황금색 머리띠를 휘날리며 아이들과 야자열매로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노화는 발뒤꿈치에서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