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공상과학 소설에 나올 것만 같은 이 낯선 숫자의 연도가 벌써 4월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간다. 늘 하는 소리지만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른 걸까? 내 마음은 여전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1990년대의 터널을 통과한 지 십여 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가 그간 쌓였다니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 20대였던 1990년대의 기억들은 일 년, 일 년이 각각 하나의 두꺼운 낱권으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왜 30~40대의 세월은 1권짜리 단편집으로 압축되어 기억되는 걸까? 이게 나만 느끼는 이상한 기억법이 아니라면 이러한 세월의 두께와 인식의 간극 문제를 증명해 줄 뇌과학계 또는 심리학계의 아인슈타인은 없을까?
시간에 대한 감각이 이처럼 무딘 나는 몸의 감각 또한 많이 무디다. 그래서 내 얼굴에 내린 세월의 자국들에도 민감하지 못하다. 또 나는 유전적으로 흰머리도 거의 나지 않는 편이고, 단순하고 낙천적 성격으로 갱년기가 무언지도 잘 모른다. 또한 타고난 체력으로 집과 직장에서 누구보다 제일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나마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노안도 근시 안경을 평생 써 온 시력 탓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느끼는 시간적 감각도, 나이를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감수성도 부족한 나이기에 내 또래보다 철없는 모습으로 사는 편이다. 이런 내게 노화가 현재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 계기가 최근에 생겼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바로 내 발 뒤꿈치를 보면서부터이다.
어느 날 우연히 발뒤꿈치가 양말을 스치는 느낌이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느다란 흰 실로 된 그물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듯 미세하게 발뒤꿈치가 갈라져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양말을 벗을 때마다 가벼운 마찰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 까칠한 발뒤꿈치의 촉감과 거친 모양새가 영 낯설고 당황스러워 한참을 만지고 쳐다보았다. 얼굴과 달리, 쳐다보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도록 내 눈 앞에 떡하니 놓여 내 신체의 세월을 증언하는게 자꾸만 신경쓰였다. 그때부터 나는 그동안 기껏해야 얼굴에 찍어 바르던 로션을 처음으로 발에도 열심히 발라 문질러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을 로션이나 핸드크림을 정성껏 발라주어도 여전히 내 발뒤꿈치의 거침과 갈라짐은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잔가시 같은 거친 살 조각들은 노화를 외치듯 일제히 일어났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단순히 수분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시간의 결과물임을 선언하듯 자꾸만 도드라졌다.
눈가의 주름과 흰 머리카락, 시력의 변화는 끝내 모른 척하던 내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미세하게 갈라진 채 까칠하게 나를 바라보는 내 발 뒤꿈치의 표정을 모른 척하기에는 이제 더 이상 2021년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