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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Mar 12. 2023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화장품이 왔다.  화장품은 인터넷으로는 거의 처음 주문해 본다. 며칠간의 인터넷 검색 끝에 나름 좋다고 추천된 제품을 주문했는데, 뭔가 생소하면서 딱히 좋은 줄 모르겠다. 하긴 20년을 줄기차게 한 브랜드의 화장품만 써왔으니까 뭐든 낯설지 않을 리가 있나.


 작년 초 화장품 방문판매 아줌마가 갑자기 이런 말을 내게 했었다.

"처음에 선생님을 봤을 때는 선생님도 참 어렸었는데 그때가 벌써 20년도 더 지났네요."

"아, 그런가요? 저희가 만난 게 그렇게 오래되었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하던 나는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그분과의 인연이 20년이 넘은 시간이라니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아줌마는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마치 우리의 이별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지금은 방문 판매하는 사람들이 아예 학교에 들어올 수 없기도 하고 온라인 판매로 거의 사라지는 직종이지만 그 시절은 수시로 각종 방문판매원들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험 판매, 신용카드 판매, 구두 판매, 영어회화 테이프 판매, 심지어 속옷 판매까지.  

 그렇게 한 앳된 교사와 열정 넘치던 방문판매원은 20여 년 전 우연히 만났다. 그 사소한 인연이 이렇게 질길 수 있었다니.


   처음 만난 이후 내가 옮겨가는 학교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던지 신기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던 그분이 지금 일 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다.

"선생님, 뭐 떨어진 거 없어요?" "요즘 특가로 나온 게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일 년에 서너 번은 전화를 하고 불쑥 찾아오던 분이었다.  학교 일이 정신없이 밀려드는데 갑자기 전화를 하거나 말없이 찾아올 때면 나는 때로 편치 않은 표정을 비치곤 했다. 그러면 뭔가 미안해하면서도 주섬주섬 물건을 펼치던 분이었다. 그리고 화장품을 많이 쓰지 않는 나는 아직 쓸 양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도 먼저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아직 남아있다고 말하면, 특가로 나온 게 있다고 한번 보라고 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던 분이었다.  또 코로나 시국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며 학교 안으로 못 들어오면 내가 내려가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던 그분이 말 한마디 없이 연락을 뚝 끊은 것이다.


  이제 나는 방문 판매 외에는 화장품을 사는 법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십여 년간 한 화장품에 그렇게 나를 길들여 놓고 어느 날 사라져 버린 그 분.  일방적으로 그분의 연락으로 항상 만남이 이루어졌고, 연락을 받기만 하던 나의 사이에는 그 긴 시간과 달리 어떤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분이 신상 화장품을 권하거나 가벼운 대화를 건넬 때에 단편적 대답으로 말을 단절시키던 나였다.  그렇게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였을 뿐인데, 내 마음은 왜 이리 안절부절인 걸까?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자꾸만 머릿속에 그분이 떠오른다. 연락을 해 볼까 전화기를 만지작 거려보지만, 사실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도 않고 그전에 온 연락처를 찾아내서 해보기도 뭔가 어색했다.(찾아질지도 알 수 없다. 몇 달 전 내 휴대폰이 바뀌었기에.)  그렇게 곧 있으면 연락을 주겠지 하며 기다리며 몇 달이 흘렀다. 그동안 떨어져 버린 화장품을 샘플용으로 버티며 썼고, 그 마저도 다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일주일 전 처음으로 집 앞 화장품 매장인 올리브영을 방문했다. 하지만 수많은 화장품들 속을 방황만 하다 무엇을 살지 몰라 그냥 나왔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으로 적당한 것을 주문했다.


  사소한 인연이라도 20년이 넘으면 내 일부가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내 영역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아려오나 보다. 혹시나 아픈 것은 아닌지,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 때문에 일이 안되어서 이직을 한 것인지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건가 보다. 아니면 나이가 많아져서 퇴직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인연을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살지 못한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소소하게 웃으며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뭐라고 다급하게 앞만 보고 살았는지 삭막한 나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시간이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빙글빙글 돌며 왔던 길을 다시 가기도 하고 어느 곳에 잠시 멈추기도 하고, 지그재그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듯 끊어진 장면들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고 여러 개의 사진들이 겹쳐져 지나가며 혼재하기도 한다.  여러 시간들이 동시에 흘렀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그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나는 멀미하듯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20여 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수가 없다.


   2023년이라는 챕터가 열렸다. 그래서 나는 또 한 살만큼 나이를 먹으며 2022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내 시간은 왠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공간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육체의 노화는 시간과는 별개이다. 1990년대의 시간과 2000년대의 시간과 또 지금의 시간은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깝고도 멀고, 따로이며 또 같이 있다. 내 몸과 달리 내 정신은 여전히 멈춰진 그 시간들 속에 혼재되어 살아간다.


 이제 1년의 시간이 내 앞에 놓였다. 아니, 움직이고 있다. 아니,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 인간이 구별지은 시간은 사실 흐르지 않는다. 제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추억과 인연과 그리움 속에서. 시간은 계속 회전하는 수레바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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