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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Feb 22. 2023

시는 글이 아니다

  너무 아플 때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가슴속 감정이 머릿속 사고의 영역을 침범해 생각의 마디를 모두 끊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글과 다르다. 마음이 아플수록 잘 쓸 수 있다. 그러니 시는 글이 아니다. 글은 문법과 어휘와 맥락을 따지며 의자에 차분히 앉아서 손으로 긁적여 눈앞에 형태가 드러나야 비로소 써지지만, 시는 그냥 가슴속에 굴러다니는 감정 뭉태기 하나를 토해내면 된다. 그러나 토해낸 감정이 활자화되는 순간, 차가운 백지 위에서 녹아내리는 뜨거운 아이스크림 같은 맥없음과 허망함으로 또다시 입 속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토해낸 시를 쓰는 자, 그는 강철의 심장을 가졌거나 심장이 없을 것이다. 도려낸 심장의 조각들을 다 뱉어버렸으니.


  가벼운 심장을 가진 나는 오늘도 토해낸 시를 결국 삼키고는 길 잃은 글 한 도막을 낑낑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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