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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n 29. 2024

자연성과 편리함의 공존을 꿈꾸다

날씨가 점차 더워온다. 좁은 교실에 열 많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교실은 여름이 더 빨리 찾아온다. 예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고 한여름을 났다. 에어컨이 학교에 처음 들어온 그때에도 에어컨은 유니콘만큼이나 드물게 살짝, 그리고 미지근하게 맛만 보듯 가동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고 난 한낮의 여름, 그 찜통 교실에서 감히 교사 일인을 위한 에어컨 가동은 상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나 때는.  다행히 지금은 그런 제재가 거의 없다. 이제 에어컨의 계절이다. 아침부터 퇴근까지 열심히 돌아갈 에어컨.


하지만 과거의 때를 기억하는 중년의 나는 아이들이 있을 때는 덥지 않은 수준에서, 그리고 아이들이 가고 난 교실에서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에어컨을 최소한 조절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에너지 절약일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 여름 각종 냉방지대의 비자연성에 대한 *라떼인으로서의 불편함이 그 이유이다. (*과거 자기가 살았던 때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현재 젊은 사람들에게 주입하려는 듯 ‘나 때는’이라는 말을 연발하는 사람)


우리는 얼마큼의 편리함이 필요할까?  벌써부터 얼음장 같은 카페 등의 공간에서 나는 그런 고민이 든다. 나에게 이런 고민을 안겨준 또 하나의 도구는 건조기였다. 나는 건조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제법 주관적이고 편향적일 수 있다. 다수의 건조기를 쓰는 사람들이 나에게 추천목록 1번으로 추천한 것이 건조기인 것으로 보아 아마 건조기를 사용한다면 나의 마음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사용해 보지 않은 현재의 편협한 시점에서 나에게 건조기는 좀 낯설다.  어차피 나 또한 세탁기계로 빨래를 하면서 그 빨래를 햇볕에 건조하냐 기계로 건조하냐가 무슨 차이가 있다고 이런 글을 쓸까 싶기도 하고, 또 아파트라는 공간이 빨래를 널기에 불편하고 햇볕 건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특히 여름처럼 장마가 지속될 때면 빨래에서 나는 군내를 나 또한 참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서 바로 널면 될 것을, 굳이 다시 건조기에 넣어 돌린다니. 굳이 그 과정이 그렇게 필요한가 하는 생각에 라떼인은 궁색하지만 불편한 감정에 구시렁 거려 본다.


어디까지가 편리함이고, 어디부터가 비자연성인지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나의 주관이 작동하는 라떼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라떼인은 아직 덜 더운 교실에서는 에어컨을 끄거나 약하게 켠 상태로 업무를 보며 여름의 기운을 내 몸과 나눈다. 또,  돌돌돌 돌아가는 세탁기가 멈추면 빨래들을 꺼내서 베란다까지 끙끙 거리며 들고 가 빨래건조대에 한 장씩 털어서 넌다. 그리고 창문을 열면 자연의 바람과 햇볕이 베란다를 넘어와 빨래들을 보송보송 말려주기 시작한다.


우리를 둘러싼 각종 비자연성이 편리함을 넘어가는 느낌이다. 이 정도의 편리함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할까? 집에 앉아서 세상 모든 곳의 물건을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고 결재한다. 어떤 물건은 그날 새벽에 도착한다. 점차 주변 소매점들은 사라져 간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을 나가지 않는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을 시킬 때에는 키오스크를 사용한다. 더 이상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로봇인 경우가 많다. 종업원의 친절에 감사하거나 맛에 대한 칭찬을 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먹고 조용히 나가면 된다. 세상은 급속도로 연결되는 편리함 속에 급속도로 단절되는 비자연성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이 편리함을 가지면서 자연성을 지킬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라떼인도 이러한 편리함에 그저 빠져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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